대망 1, 야마오카 소하치


제목: 대망 1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

출판사: 동서문화사

초판 1쇄: 1970년 4월 1일

2판 1쇄: 2005년 4월 1일

2판 14쇄: 2012년 3월 1일

독서 기간: 12월 13일 ~ 12월 16일

추천인:


소감:

인상 깊은 구절:

제 4장: 봄볕

1. "오, 또 꾀꼬리가 우는군. 유리, 고자사. 들었느냐?"

"네."

두 사람은 귀를 기울였다.

"지불당(持佛堂) 성벽 밖에서 우는가 봅니다."

"그래, 그 언저리인 것 같아……. 저 꾀꼬리는 어째서 저 담장 밖에 오는 것일까?"

"매화가 만발해 있기 때문이겠지요."

"유리-"

"네, 마님?"

"너는 매화가 꾀꼬리를 부르는 것을 보았느냐?"

유리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 매화는 그저 가만히 피어 있을 뿐……. 꾀꼬리를 부르지는 않아. 오다이도……."

그리고는 천진스럽게 고개를 갸웃했다.

"웃어도 괜찮겠지, 응, 유리?"

"마님."


2. 상대의 불행을 기뻐하는 오히사와, 마음을 비운 슬기로움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오다이의 슬픔이 히로타다의 가슴에 아름다움과 추한 그늘을 선명하게 만들어갔다.


3. 유리와 스가가 놀라며 그를 맞았으나 히로타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침실로 들어갔다.

"다이!"

불러놓고 히로타다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하얀 이불깃 속에서 검은 머리만이 내다보이고 그것이 세차게 물결치고 있다. 아직 14살 밖에 안 되는 소녀였다.

"다이……."

히로타다는 그 머리맡에 살며시 몸을 굽히고 말했다.

"용서해라, 내가 나빴어."

별안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히로타다는……. 술버릇이 나쁜 모양이야. 앞으로는 삼가도록 하지, 용서하라."

이불이 더 한층 세차게 떨리더니 거기서 살며시 오다이의 얼굴이 내다보였다. 눈언저리가 젖어 있다. 입매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의지로 슬프게 일그러져 있었다.

"울지 마, 이제 그만 울어."

"네…… 네."

"내가 나빴어, 울지마."

이 대화는 옆방에 있는 유라와 스가에게도 손에 잡힐 듯 들렸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발그레 볼을 물들이며 즐거운 미소로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봄볕이 마침내 꽃을 품은 모양이다…….


제 7장: 덫과 덫

일그러진 시대는 그대로 일그러진 사람을 만든다. 이미 혈육의 살상을 도리에 어긋나는 일로 여기지 않는 난세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온갖 모략이 필요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루의 양식을 위해 허덕이는 농민이나 영주나 모두 평등했다. 그처럼 역사상 보기드문 난세에 태어난 것이다. 오다 편에 붙는 게 살아남는 길이라고 믿는 노부모토로서는, 만일 오다 쪽에 가담하기로 결정되면 자기를 벨지도 모르는 아우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베지 않으면 안될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제 9장: 아즈키 고개

"기원 하자. 올해는 범해야. 범처럼 늠름하고 강한 자식을 점지해 주십사고 신불에게 기원하자. 내 자식에게는 이토록 분한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네……."

"이마가와에 의지하지 않고, 오다에게 굴하지 않고 혼자서 유유히 천하를 걸어갈 수 있는 자식……."

히로타다는 자신에게 부족한 꿈을 그리며 마침내 오다이의 손을 잡았다.

'이 싸움에서 어쩌면 전사할지도 모른다…….'

이마가와가 이기든, 오다가 그것을 물리치든 히로타다는 그 나름대로 무인의 기개를 보여주어야 했다. '죽음'은 결코 공상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자신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히로타다는 자신의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오다이의 몸에 애절한 정을 느끼며 아무 거리낌 없이 오다이의 목덜미에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오다이…… 부탁해. 이 히로타다에게 만약의 일이 생기더라도…… 당신은 반드시 살아줘. 태어나는 자식을 위해 살아야 해."

뜨거운 목소리로 속삭인 다음, 도톰한 오다이의 귓볼에 입술을 가져갔다. 오다이 역시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리며 히로타다에게 안겨들었다. 이런 때 우는 것이 히로타다의 마음을 얼마나 약하게 만드는 일인지 알면서도 억누를 수 없는 커다란 감정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제 16장: 전국(戰國) 부부

오다이의 흐느낌이 높아지자 히로타다는 무엇에 홀린 듯 말이 빨라졌다.

"왜 이리 알아듣지 못하나? 이 히로타다는 그대보다 더 슬퍼. 그러니 참아줘! 아무튼 뜻대로 안되는 게 뜬세상 일이야. 오늘이 이 세상에서의 이별이 될지도 모르겠어. 그렇지, 이별이 될 거야. 그러나 내세가 있잖아. 저 세상이라는 곳이 있잖아. 그대가 없어지면 내 건강은 오래 가지 못하겠지. 하지만 죽은 뒤 극락이라는 연꽃받침 위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겠어."


제 18장: 별리(別籬)

"이유를 말하지 않고는 안되겠군요. 그럼, 들어보세요."

"……."

"가리야의 오빠에 대해서는 여러분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어요. 조급하고 거친 성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정도면 내 마음을 헤아려주시겠지요."

"……."

"여러분에게 만일의 일이 생긴다면 다케치요가 자란 뒤 매정한 어머니였다고 내가 원망받게 될 거예요. 그토록 뛰어난 무공을 지닌 사람들을 일시적인 슬픔에 사로잡혀 적지로 끌고 가 비참하게 목숨잃게 한 못난 어미였다는 소리를 듣게 돼요."

번쩍 정신이 든 듯 가네다가 얼굴을 들고 모두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돌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오다이는 살그머니 눈시울을 눌렀다.

"조심은 미리 해야 하는 것……. 이것은 아버님이신, 다다마사님의 가르침이었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다케치요와 노부모토님은 외삼촌과 조카, 그 사이에 원한의 씨앗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게 나의 소임이라고 생각해요. 부탁이에요! 다케치요의 앞날을 위해 부디 돌아가주세요."

갑자기 남자들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의 어깨와 삿갓이 잔물결을 일으키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카이가 쥐어짜는 듯한 소리를 냈다.

"마님! 17살 나신 마님 앞에 부끄럽습니다……. 이 나이에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렇습니다. 성에는 우리의 소중한 다케치요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돌아갑시다. 돌아가서 오늘 마님께서 말씀하신 이 훈계를 잊지 맙시다."

오다이의 가마는 아베 사다지가 불러온 농부 손에 맡겨졌다. 오다이의 재촉을 받고 오카자키의 중신들은 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며 성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오다이는 가마를 메게 했다. 비로소 온몸을 죄어오는 고독에 흐느껴우는 소리가 가마 밖까지 새어나왔다.

오다이의 언니 히로이에 부인은 이런 배려를 하지 못하여 그녀를 전송한 16명의 호송자는 노부모토에게 하나도 남김없이 살해되었다.

하늘에 한 조각의 구름도 없는 날에…….


제 25장: 붉은 단풍

여기까지 말하고 셋사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문득 뜰의 녹음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녹음 속에 단 한 그루 붉은 단풍이 섞여 있지요?"

게요인은 의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거기에는 새싹 때부터 붉은 날개를 펼친 것처럼 새빨갛던 단풍잎의 붉은 색이 뚜렷이 눈에 어려보였다.

"저 단풍은 여름동안 모든 잎사귀 가운데 오직 홀로 붉은빛을 띠고 있었소. 다른 파란 잎들은 어째서 붉은색 단풍나뭇잎만 빨간 것일까 하고 웃고 있을지도 모르오. 허지만 때가 오면 주위의 나무들이 붉게 물들어 단풍나무도 언젠가 붉은색 속에 묻히게 되오. 그러면 어느 것이 단풍나무였는지 구별도 안되는 채 잊혀지고, 오히려 붉은색이 덜하다고 나무람받을지도 모르오. 나는 저 단풍이 되고 싶소! 그리고 단풍의 마음을 이어받은 무장을 얻고 싶소! 스님, 그것이 이 셋사이가 작은 안조 성에 집착하고 오카자키 가문에 특히 냉혹한 이유요. 아시겠소?"


제 30장: 서로 다가서는 자

"산노스케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다케치요가 다 먹으면 자기 몫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다케치요는 눈도 깜빡이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도쿠치요는 다케치요가 혼자서 다 먹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다케치요를 믿고 있었다. 즉 신(信)이 있었기 때문에 다케치요가 먹지 않으면 먹지 않으려고 했지……."

셋사이는 여기서 말을 끊고 자신의 눈빛이 다케치요의 나이를 잊고 엄격하게 변해가는 것을 의식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산노스케 역시 다케치요를 빋게 됐다. 잠자코 있어도 혼자서 다 먹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산노스케는 도쿠치요의 흉내를 낸 게 아니라 다케치요를 믿고 도쿠치요를 믿은 것이다. 알겠느냐? 신(信)이 있었기 때문에 그 얼마 안되는 식(食)이 살아나 세 사람의 목숨을 이을 수 있었던 거란다. 그런데 그 신(信)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셋사이는 여기서 다시 눈빛을 부드럽게 바꿨다.

"도쿠치요가 혼자 다 먹는다면 나머지 두 사람은 굶주리게 된다. 다케치요가 혼자 먹어도, 산놋케가 혼자 먹어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이 없어지면, 세 사람 모두 굶주림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그 식(食)이 싸움의 씨가 되어 오히려 피투성이 칼싸움으로 끌어들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다케치요가 무릎을 탁 쳤다. 어느새 몸을 책상 위로  쑥 내밀고 눈을 보름달처럼 크게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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