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하여


회색 잿빛 건물에 둘러싸여 매일 같이 컴퓨터에 시름 하느라 잊고 있지만, 잠깐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면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린다. 더 창문 가까이 다가서면 안 보이던 나뭇가지 위 새싹이, 봄바람에 꽃내음이, 재잘대는 새소리가 들린다. 자연은 늘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한다. 다만, 저마다 바쁘다는 갖가지의 핑계로 잠시 잊혀진 것뿐이다. 


계절은 분명 네 개뿐이지만 따로 묻거나 찾지 않아도 절로 오는 탓인지, 평소에도 관심을 두는 사람은 흔치 않다. 올해 가을 어느 날, 학원 급식으로 어묵탕이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석정이는 그것을 보고 좋아하더라. 내가 아는 석정이는 해산물을 싫어해서 왜 어묵탕을 좋아하는지 물었고 석정이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뭐,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어묵을 보니 겨울이 온 것만 같잖아요. 하하…."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어묵을 떠먹을 때, 석정이는 그 속에서 겨울을 본 것이다. 이런 하나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이 쌓여 행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올해 어느 봄날, 아직 피지도 않은 들꽃을 손수 만든 꽃병에 담아 교실 안으로 들여온 아이가 있었다. 언제 죽을까 싶었던 그 가냘픈 꽃봉오리는 놀랍게도, 다음날 단 하루 만에 수수한 아름다움으로 만개했다. 학원 사람들 누구나 다 눈이 달려있으니 길가에 핀 들꽃을 보긴 본다. 하지만 자신이 보고 느낀 그 아름다움을 다른 누구와 나누는 것까지 하지는 못한다. 덧붙여, 미개(未開)한 꽃을 보면서 동시에 만개(滿開)한 꽃의 아름다움까지 상상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무료한 일상으로 점철된 빛 교실 안으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들여와, '모두에게 하나뿐인 스무 살의 봄이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음'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시간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말이 있다. 계절도 자연도 마찬가지다. 밤하늘 위 저 달이 나에게만 아름다울까. 아니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오늘 처음 출근하는 슬아에게도, 조선 제이 장도 장인인 남중이에게도, 대학에 합격해 좋아하는 준호에게도 여지없이 저 달은 아름다울 것이다. 


자연을 향유한다는 것은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종교, 지리, 예술을 막론하고 80억 전 인류와 나눌 공감대가 있다는 것.

과거 현재 미래를 막론하고 최고(古)이며 최고(高)인 취미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이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목숨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릴 수 있다는 것.

이 아닐까 한다.


12월 21일 2015년

월요일 오후 9시

27일 강대기숙 입소를 준비하며,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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