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폭(上)


내가 말하는 '생각의 폭'은 '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는 수준'이고 대체로 나이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식품판매장 과자 부문을 가보면 과자 사달라고 울부짖으며 엄마에게 떼쓰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연령대의 아이들은 자기들밖에 모른다. 엄마 지갑 사정은 신경도 안 쓰고 잠깐의 미각적 즐거움만을 위해 매장 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는 것 또한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좀 더 커서 초등학생이 되면, 대(大)자로 뻗어 울고불고 소리 지르는 것만이 최선이 아님을 깨닫고 엄마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엄마가 화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조용히 가만있다가, 엄마가 웃기라도 하면 애교부리며 조르기도 하고, 어제 받아쓰기 100점 받았단 걸 넌지시 이르며 자기만의 당위성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래도 그래도 아직은 자기들밖에 모른다. 중고등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기 시작하면, 이제 슬슬 엄마 생각도 하기 시작한다. 핸드폰 살 때 아빠 직업과 연봉도 생각하고 친구 집 크기와 핸드폰을 그네들의 그것들과 견주어가며 고르기도 한다. 그리고 제 딴에는 좋은 대학으로 보은하려 작심삼일 공부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잠깐이지만 진심으로 다른 사람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A : 김부장 XX 새끼. 아 그냥 때려치고 치킨집이나 할까.

B : 야야 참아. 네 처자식 생각도 해야지. 뭐 별 수 있냐. 우리 사는 게 다 그렇지...


위 장면과 같이 다른 한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는 걸 넘어, 그 사람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나 직장 같은 그 사람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부터는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느냐'에 따라 범인에서 성인까지 달라진다. 


사(私)를 넘어 공(公), 이(利)를 넘어 의(義)까지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 그것이 성인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싶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주말마다 하는 파트타임으로 돈독이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하는 시간을 늘리다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일을 그만둔 그 날부터 한 달간 '어떤 사업 아이템이 좋을까'를 온종일 고민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밥 먹거나 볼일 볼 때도 심지어 꿈에서도 항상 그 생각뿐이었다. 슈퍼에서 새우깡을 보면 '새우깡 왜 먹지? 맛도 없는데. 사람들은 이걸 왜 살까. 왜 팔까. 왜 만들까.' 같은 질문들을 자신에게 계속 물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하니, 내 멋대로 끼워 맞추기식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답이 나오더라. 어쨌든 처음에는 막연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나 스스로 여러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더라.


시작은 생산자였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생산자가 되어본 적이 없고, 또 제조 공정에 관해선 일자무식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기 쉽겠네/어렵겠네, 싸겠네/비싸겠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판매자부터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는데, 매장을 둘러 보며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과 연관 지으려 노력했다. 포장지 색, 광고문구, 배치 위치 등등 어떻게 해야 잘 팔릴지에 대해 최대한 깊게 생각하려 애썼다. 끝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넓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노인의 입장에서, 청년의 입장에서, 소년의 입장에서, 그리고 여자의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이렇게 한 달간의 고민 끝에 괜찮은 사업 아이템을 하나 찾아냈고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나는 첫 사업에 실패했다. 실패했지만, 하나의 사물을 두고 여섯 가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경험을 통해 생각의 폭을 비약적으로 넓힐 수 있었다.



11월 23일 2015년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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