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게.


아무 일 없이 편지를 잘 받았다니 다행이다.

그 소식을 기다렸던 지난 열흘은, 기다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것은 여느 기다림과 달리 매우 특별한 것이었는데, 특히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난 뒤의 그 느낌은 활시위를 막 떠나는 화살을 보는 것 같이 아쉬움만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나서 바로, 너로부터 들려올 좋은 소식이 기대돼 내 마음은 이내 '기다림'으로 다시 채워졌다. 마치 내일 소풍 가는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듯이, 그날 밤은 오랫동안 내 마음을 설레게 해주었다.


5월 20일 2013년

월요일 오전 3시 40분

부러진 화살을 보고,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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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지난 10월 28일에 지나간 세월 탓에 느려지고 액정이 깨져 언제나 나에게 불편함을 주던 핸드폰을 뒤로하고 새 아이폰을 가지고 대리점을 나올 때는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언제와도 같이 무료했던 세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화사하고 신비로워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 연락을 더 이상 주고받지 않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들을 정리하는데, 남은 사람들이 얼마 없다는 것을 본 순간, 아이폰을 손에 처음 쥐었을 때 느꼈던 청아함은 저 멀리 날아가고, 오직 공허만이 내 가슴에 남아 쓸쓸함이 가득하였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그 공허를 오랫동안 가슴 깊이 새기고,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 하나하나를 천천히 다시 보았는데, 그들 대부분이 나와 피로 맺어져, 죽을 때까지, 혹은 죽어서도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낼 친척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에게 친척이 아닌 친구는 거의 없다고 해야겠다.


너는 그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분명히 나의 친구로서, 텅 빈 내 가슴을 환하게 밝히는 등불로서 존재한다. 나는 그 어떤 영화나 책을 읽더라도, '친구'라는 단어를 듣거나 보게 된다면, 반드시 너를 내 가슴에 담아둘 것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너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이며, 너 또한 그러하기에 이 편지를 읽고 있는 것이다.


친구여, 나에게도 네 가슴 속 빈자리 하나 내어다오.

너 좋을 때 멀리서 웃음 한 줌 보탤 수 있게

너 힘들 다가가 내 작은 품 내어줄 수 있게

네 가슴 속 빈자리 하나 내어다오.

누구보다 자신 있고 당당하게

나 그 한 자리, 해낼 수 있소.


11월 3일 2013년

일요일 오후 4시

여행을 준비하며,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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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죽은 사랑을 싣고

화월선


나 오늘 하루 속 편히 보낼 수 있었던 까닭은

그대가 밤을 지새우며 정성 들여 끓여준

호박죽 한 그릇 때문이리라.


그대가 나를 생각함에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듯

나 또한 이 마음을 전함에 있어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고백하노라.


꽃 같은그대의 고운 얼굴과 마음씨,

고이고이 간직하길 바라고

바라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며

내 마음을 담아 보내노라.



남몰래 호박죽을 챙겨 준 영양사 누나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쓴 편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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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서시(序詩)

화월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 해결이 될까.

하지만 시간을 되돌리지는 못한다.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우리들의 세상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도 모를 기적이 일어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나는 내가 지금 바라는 대로

행복해 질 자신이 없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이

로마의 영웅들을 존경하고

서태지의 음악을 좋아하며

단 하나의 사랑에 목메 사는

손유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아직도 간절히

이제는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그때로 돌아가길 원하나 보다.

이제서야 나는

그때의 그리움을 사랑하고

그때의 슬픔마저 추억으로

간직할 준비가 된 것이겠지.


자, 지금부터 나는 기적을 만나러 가겠다.



내 미래의 유서 혹은 죽음이 임박했을 황혼기에

마지막으로 쓸 수필의 서시. 고1 무렵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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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표(出師表)


내 꿈은 세계정복이다.

벌써부터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지 마라.

그렇다고 또 불가능하게 '보인다'고도 하지 마라.

그렇게 가능성만을 운운하다가는

이만한 가치가 있는 꿈을 죽을 때까지

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

나는 너희와 다르게 이만한 꿈을 품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 세계를 제패해

너희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세계의 패권을 잡았던 나도

지는 태양이 되어 왕좌에서 내려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몇십 년 전에 내가 했던 맹세를,

몇십 번을 실패해도 이것 하나만큼은

죽어도 지키겠다는 이 꿈의 맹세를,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다시 되뇌겠지.


"나 손유린은 지금 이 순간부터

돈에 대한 열정과 꿈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을

내 인생을 걸고 맹세합니다."


1월 16일 2008년

수요일 오후 7시



고1, 사업을 천직으로 삼고 비장한 각오로 첫 사업에 임하며 쓴 출사표.

공자가 15세에 학문에 뜻을 둔 것을 본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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