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웬만해서는 인터넷에 글을 남기지 않습니다. 만인을 대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꺼림칙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익명으로 쉽게 드나들며 여러 정보를 쉽게 주고받는 곳'이라 합니다. 하지만 요즈음 이 말을 되돌아보면 꼭 그렇지마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디나 닉네임 같이 어느 특정한 흔적 한두 개만으로 그 사람의 신상을 넘어 주변 인간관계까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캐낼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인터넷에 제 자취를 남기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아주 지독한 눈팅족이기도 하죠.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카페 회원가입과 동시에 등업신청란을 볼 때입니다. 준회원에서 정회원으로 넘어가는 길목은 그리 험하지 않습니다. 게시물 한두 개와 댓글 열 개 정도겠지요. 


신규회원들이 부담 없이 채울 만큼 가벼운 조건인 건 분명 잘 압니다만, 저로서는 그 댓글 하나 쓰는 것조차 힘듭니다.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내가 남긴 그 아주 조그마한 댓글조차 모조리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말입니다. 이런 어쩔 수 없는 때가 오면, 저는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글을 남깁니다. 만인이 보아도 아무런 문제를 찾지 못할 만큼 간단하게 말입니다.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이 카페에 새로 가입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같이 국어 교과서에 나올 만큼 판에 박힌 말투로 말이죠.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는 저도 활발한 제 또래들처럼 SNS[각주:1]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싸이월드가 대유행이었던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저도 제 사진을 비롯한 여러 재미있는 사진을 올리며 나누고 친구들 방명록에 댓글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싸이월드는 윈도 95 초록색 바탕화면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비공개로 해 놓았고 싸이월드를 비롯한 모든 SNS를 통해서 사람들과 연락하지 않습니다. 역시 인터넷의 모든 것은 기록에 남는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각주:2]


지금 제가 이렇게 장문의 글을 남기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만, 누구나 어렵지 않게 만인을 대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유일무이한 매체인 인터넷의 덕을 저도 누리고 싶습니다. 


저도 어제부로 이 곳을 통하여 만인을 대상으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를 불특정 다수인 그 어떤 만인을 대상으로.

그동안 제 머리나 가슴 속에 갇혀 있어야만 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9월 26일 2012년


  1. Social Network Service [본문으로]
  2. 글쓴이의 싸이월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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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비밀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저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저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람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장단점 둘 다를 보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사람들이 제 단점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언젠가는 드러날 수밖에 없을지라도 저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제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저의 선한 모습만 보이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 앞에서 쓸데없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 언행을 최대한 절제하고 단점을 감추며 말이죠. 그렇다고 해도, 특별히 장점을 내세우지도 않았습니다. 장점이란, 스스로 내보였을 때 모양새가 썩 보기 좋지 않기도 하고, 스스로 내보이지 않아도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제 비밀과 고민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위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오랜 시간 살아오다 보니, 저 자신에게 여러 가지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서툴러진 사교성 편협해진 주변 대인 관계


사교성이 서툴러지다 보니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껄끄러워지고, 기존의 대인 관계 또한 점점 좁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것을 향해 도전 조차하지 않으려는 멍청한 놈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조차 저는 이 글을 수십, 수백 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이 익명의 글이 제가 쓴 것이라고 알 수 없을 텐데 말이죠. 예전에는 제 나름대로 시와 글을 써서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제일 행복한 일이었는데, 그때의 제 모습과 비교해보면, 참 멀고도 먼 길을 온 것 같습니다.


글 쓰는 것이 마냥 즐겁고 매사에 밝았던 과거의 나를 향하여

오늘부로 이 먼 길을 되돌아가려 합니다. 

이 먼 여정의 끝에서 미소 지으며 기다리고 있을 미래의 나를 위하여.


9월 25일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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