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서성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게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0>


'애송 & 영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 서: 일장, 유치환  (0) 2015.12.06
그 날이 오면, 심훈  (0) 2015.12.06
춘향유문(春香遺文), 서정주  (0) 2015.12.06
꽃, 김춘수  (0) 2014.04.07
사모, 조지훈  (0) 2014.04.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