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뒷담화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할 때는 항상 '대상'에게 좋거나 중립적인 이야기만 하려 노력한다. 왜냐하면, 뒷담화는 대상에게, 상대방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결코 올곧지 못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재한 대상을 두고 뒷담화할 때, 대상은 그 자리에 없으니 당연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사실만 말한다 할지라도 그 대상에게는 변명은 물론이거니와 사과할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의견을 말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실확인조차 없었던 대상에 대한 뒷말들이 뜬소문으로 드러난다면, 그동안 피해 주고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보상과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우리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중에는 내가 직접 만난 사람도 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의 소개를 받아 만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소개받는 경우, 소개자의 설명이 중요하다.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낙타와 펭귄이 나의 소개로 만나게 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셋이 모이기 전에 내가 낙타에게 펭귄의 칭찬을 하고 펭귄에게는 낙타의 험담을 한다면 그 둘의 관계는 안 봐도 뻔하지 않을까. 소개자인 나의 개입으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선입견이 심어져서, 만나기 이전부터 낙타는 펭귄에게 호감을 느끼고, 펭귄은 낙타에게 비호감을 갖지 않을까. 아무 선입견 없이 만났다면 그 둘의 관계는 어찌 될지 모를 텐데 말이다. 그러므로 상대방과 대상 간의 어찌 될지 모를 미래의 관계를 위해 함부로 뒷담화하지 않는다.
내 지난 짧은 인생을 돌이켜보면, 듣기 좋은 험담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 당장의 값싼 희열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발만 뒤로 물러서서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들은 그 모든 뒷담화들이 전부 허망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대게 다른 사람의 흠을 말할 때, 혹시나 자신도 그런 흠을 가졌는지 잠시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같은 비판을 피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한다.
다른 사람 뒤에서 몰래 험담하는 사람은 결코 좋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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