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제 2
편지가 왔다. 영제가 왔다. 반갑다, 영제야. 그 힘든 곳에서도 잘 지낸다지. 껌과 레모나를 보낼 때도 걱정 좀 했는데 잘 받았다니 여간 다행이 아니다. 사실, 편지 하나 딸랑 보내 놓고 늦는 답장에 심술 나던 찰나, 네 편지를 받아 부끄러움이 한가득이다. 그래서 이번 편지엔 고마움 위에 미안함도 조금 더 담아 보낸다.
영제야,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 먼저 사랑을 한다지. 나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가 말하는 ‘아름다운 사람’은 조건 없이 나누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내 눈엔 그런 사람이 보이질 않으니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 오랜 생각은 아니다. 기껏해야 이번 겨우내 찬찬히 한 것뿐이다.
한참이나 부족한 내 탓이겠지만, 이전에도 내 주변엔 그런 사람이 드물었거나 아예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그릇이 될 만한 젊은 친구들도 얼마 못 본 것 같다. 하지만 영제야, 나는 그런 사람을 정말 만나고 싶다. 한두 명이 아니라 두 손, 두 발 전부로도 다 못 셀 만큼 많이 만나고 싶다. 또 나는, 그 많은 사람에게 내줄 만큼 널찍한 품도 갖고 싶다. 영제 너도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젠 일상 얘기다. 면접까지 봤는데 ‘멋쟁이 사자처럼’에 떨어졌다. 경쟁이 치열했나 보다. 그런데 문득 면접 때 날 당혹게 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그 질문에 답할 때 ‘너무 내 신념을 고집한 건 아닌가’란 생각도 잠깐 든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서 거짓을 말할 순 없다. 언제나 진심만을 말하려 노력할 뿐이다.
요새, 부당한 대우를 받은 이들의 고백이 잇따르고 있어 그분들을 위한 칼럼 하나를 쓰고 있다. 어디서 다른 누구와 하는 건 아니고 나 혼자 하고 있다. 어려운 주제라 꽤 골치 아프지만, 내 글이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이 돼주었으면 좋겠단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내 소소한 바람이다.
‘LG 글로벌 챌린저’란 팀 단위 공모전도 준비 중인데, 그동안 갈아엎은 주제만 오늘로 벌써 두 개째이다. 뭐 좀 하려고 하면 누가 이미 하고 있어서 막다른 길의 연속이라 영 시원찮다. 그래도 끝까지 해보련다.
봉사도 하고 있다. ‘동행’이라고 한번 들어봤을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은 방과 후 초등학교 1~3학년 애들을 돌보는 일이다. 목요일마다 지금까지 두 번 했는데, 첫날은 힘들었던 기억뿐이다. 내 상상 속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은 온데간데없이, 오로지 기운 뿜뿜 활기찬 애들뿐이었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게, 나랑 같이 봉사하는 친구도 나도, 첫날엔 어지간히 고생했지만, 신기하게도 둘째 날엔 그렇지 않았다. 첫날에 그렇게 날 괴롭히던 아이 두 명이 글쎄 내 그림을 그렸지 뭐냐. 자기와 친구 얼굴을 그리는 미술 시간에, 그리라는 친구 얼굴은 안 그리고 내 얼굴을 그렸다. 지금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바로 그 그림이다. 일주일을 꼭 건너 날 위해 그린, 오래 간직할 그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바쁘고 어려운 일들뿐이다. 하지만, 먼 곳에서 땀 흘리며 고생하는 네 것만 할까. 다시 한번, 부끄럽고 고마운 맘이다. 보고 싶다 영제야. 사랑한다 영제야.
3월 17일 2018년
토요일 오후 11시
너의 친구, 손유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