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에게.


안녕 민지야. 잘 지내니. 네가 걱정해주던 쫑파티는 무사히 잘 끝났어. 너도 지영이도 왔었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아쉽네. 아쉬워. 나는 지금 12월 27일에 학원 다시 들어갈 준비 하고 있어. 마음의 준비. 끝내 네 글을 못 읽고 들어가는구나. 하하…. 작년 이맘때엔 별생각 없이 학원 들어갔었는데 올해는 좀 다르네. 재수라 그런가 힘들어. 더욱더 다부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 같네.


이렇게 작년의 각오를 되새기면서 인간관계 정리도 같이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 편지 또한 쓰고 있지. 청주에서 고마웠어. 간단한 식사 한 끼라 치부하기엔 내가 깨달은 것들이 너무 값져서 쉽게 넘길 수 없네. 기억하니? 2인용 간이 책상을 이용한 유연한 사무실 공간 활용법. 내 미래의 사무실에 큰 도움이 될 거야. 고마워. 그리고 덧붙여, 네가 쫑파티에 못 온다고 내게 말할 때 미안하다고 열 번은 말했잖아. 오히려 내가 네 덕 봤는데 네가 계속 그렇게 말하니 더 미안하더라. 늦었지만 네 값진 선물에 대한 부족한 답례, 이 편지에 얹어 보낼게. 우리 다시 보기 힘든 사이니 부담 없이 받을 수 있겠지? 즐겁게 대학 생활 잘하길 바라고 그럼 안녕. 


12월 22일 2015년

화요일 오후 11시 30분

잠잘 준비를 하며,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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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대하여


회색 잿빛 건물에 둘러싸여 매일 같이 컴퓨터에 시름 하느라 잊고 있지만, 잠깐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면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린다. 더 창문 가까이 다가서면 안 보이던 나뭇가지 위 새싹이, 봄바람에 꽃내음이, 재잘대는 새소리가 들린다. 자연은 늘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한다. 다만, 저마다 바쁘다는 갖가지의 핑계로 잠시 잊혀진 것뿐이다. 


계절은 분명 네 개뿐이지만 따로 묻거나 찾지 않아도 절로 오는 탓인지, 평소에도 관심을 두는 사람은 흔치 않다. 올해 가을 어느 날, 학원 급식으로 어묵탕이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석정이는 그것을 보고 좋아하더라. 내가 아는 석정이는 해산물을 싫어해서 왜 어묵탕을 좋아하는지 물었고 석정이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뭐,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어묵을 보니 겨울이 온 것만 같잖아요. 하하…."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어묵을 떠먹을 때, 석정이는 그 속에서 겨울을 본 것이다. 이런 하나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이 쌓여 행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올해 어느 봄날, 아직 피지도 않은 들꽃을 손수 만든 꽃병에 담아 교실 안으로 들여온 아이가 있었다. 언제 죽을까 싶었던 그 가냘픈 꽃봉오리는 놀랍게도, 다음날 단 하루 만에 수수한 아름다움으로 만개했다. 학원 사람들 누구나 다 눈이 달려있으니 길가에 핀 들꽃을 보긴 본다. 하지만 자신이 보고 느낀 그 아름다움을 다른 누구와 나누는 것까지 하지는 못한다. 덧붙여, 미개(未開)한 꽃을 보면서 동시에 만개(滿開)한 꽃의 아름다움까지 상상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무료한 일상으로 점철된 빛 교실 안으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들여와, '모두에게 하나뿐인 스무 살의 봄이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음'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시간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말이 있다. 계절도 자연도 마찬가지다. 밤하늘 위 저 달이 나에게만 아름다울까. 아니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오늘 처음 출근하는 슬아에게도, 조선 제이 장도 장인인 남중이에게도, 대학에 합격해 좋아하는 준호에게도 여지없이 저 달은 아름다울 것이다. 


자연을 향유한다는 것은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종교, 지리, 예술을 막론하고 80억 전 인류와 나눌 공감대가 있다는 것.

과거 현재 미래를 막론하고 최고(古)이며 최고(高)인 취미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이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목숨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릴 수 있다는 것.

이 아닐까 한다.


12월 21일 2015년

월요일 오후 9시

27일 강대기숙 입소를 준비하며,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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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현답(愚問賢答)


나는 자주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아마도 철학을 전공하신 아버지 영향이 무척 컸으리라.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고 그 이면의 무언가를 더 깊이 살펴보는 것. 

내가 아버지에게 배운 것 중 하나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두고 맹하다고 한다. 

개의치 않는다. 우문을 해야 현자를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현문을 하고 현답을 들으면 좋겠지만, 나는 멍청해서 그럴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내 길을 간다.

나는 어제보다 오늘 하루 더 멍청해지고 멍청해져서 현자를 만나고

그렇게 우주 끝까지 계속 멍청해져서 

이 세상 모든 현자들의 손을 잡고 인민에게 내려와


모든 별들의 어둠으로서

모든 풀꽃의 거름으로서

만인의 달빛과 함께하리라.[각주:1]


12월 21일 2015년

월요일 오후 8시

할머니께서 주신 귤을 까먹으며, 손유린.

  1. 추월지기 http://july12.net/6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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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


뒷담화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할 때는 항상 '대상'에게 좋거나 중립적인 이야기만 하려 노력한다. 왜냐하면, 뒷담화는 대상에게, 상대방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결코 올곧지 못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재한 대상을 두고 뒷담화할 때, 대상은 그 자리에 없으니 당연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사실만 말한다 할지라도 그 대상에게는 변명은 물론이거니와 사과할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의견을 말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실확인조차 없었던 대상에 대한 뒷말들이 뜬소문으로 드러난다면, 그동안 피해 주고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보상과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우리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중에는 내가 직접 만난 사람도 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의 소개를 받아 만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소개받는 경우, 소개자의 설명이 중요하다.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낙타와 펭귄이 나의 소개로 만나게 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셋이 모이기 전에 내가 낙타에게 펭귄의 칭찬을 하고 펭귄에게는 낙타의 험담을 한다면 그 둘의 관계는 안 봐도 뻔하지 않을까. 소개자인 나의 개입으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선입견이 심어져서, 만나기 이전부터 낙타는 펭귄에게 호감을 느끼고, 펭귄은 낙타에게 비호감을 갖지 않을까. 아무 선입견 없이 만났다면 그 둘의 관계는 어찌 될지 모를 텐데 말이다. 그러므로 상대방과 대상 간의 어찌 될지 모를 미래의 관계를 위해 함부로 뒷담화하지 않는다.






내 지난 짧은 인생을 돌이켜보면, 듣기 좋은 험담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 당장의 값싼 희열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발만 뒤로 물러서서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들은 그 모든 뒷담화들이 전부 허망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대게 다른 사람의 흠을 말할 때, 혹시나 자신도 그런 흠을 가졌는지 잠시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같은 비판을 피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한다. 


다른 사람 뒤에서 몰래 험담하는 사람은 결코 좋게 보이지 않는다.


ㅏㅏㅏㅏㅏㅏㅏ

쓰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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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노형근


언젠가 이런날이 올거라 생각했음에

슬픔을 머금으며 웃으며 보냅니다


떠나는 그대모습 내눈에 선명했기에

사라진 그대자리 내눈엔 보입니다


내눈물 닦아주던 그대를 보고싶음에

오늘도 그곳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반드시 돌아온단 약속을 믿고있기에

돌아올 그대모습 선명히 보입니다


언젠가 이런날이 올거라 생각했음에

슬픔을 머금으며 웃으며 보냅니다



3월 31일 2014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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