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대하여 2


꽃을 좋아한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정말 꽃을 좋아하는지 궁금해 직접 텃밭에 심어봤다. 때는 봄이었고 심은 것은 코스모스였다. 매일매일 물을 주니 싹도 트고 줄기는 곧게 자라, 심은 지 약 두 달 만에 처음 꽃이 피었다.


그리고 그 꽃을 작은 병에 담아 제일 존경하는 선생님께 갖다 드리며 말씀드렸다. 꽃이 사글거든 괘념 말고 바로 버리시라고. 꽃에 담긴 제 맘이 당신께 스민 것이니 맘 편히 그러시라고. 떨어지는 꽃잎이 못내 섭하시거든, 추억으로 봐주시라고도 말씀드렸다.


꽃 피길 기다리는 두어 달 동안 들꽃을 보며 내 꽃을 상상했다. 그리고 내 꽃이 피었을 때, 다른 꽃들에 비해 내 꽃만 유달리 이뻐 보인단 걸 깨달았다. 꽃에 대한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장미가 그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은 그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라고 말했다. 꽃 피길 기다렸던 66일간의 시간은 내게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텃밭에 나가 물을 주고 이따금 말도 걸던 기억이 지금도 내 가슴에 선하다. 내가 내 꽃을 사랑하는 까닭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누군가를) 길들여지면(사랑하면), 눈물 흘릴 일이 생긴다는 여우의 말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비록 시들었지만, 내 연분홍빛 코스모스는 내 맘속뿐만 아니라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 맘속에도 지금까지 고이 피어있을 거라 믿는 까닭이다.



2월 18일 2018년

일요일 오전 0시 30분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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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제목: 어린 왕자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옮긴이: 베스트트랜스

출판사: 더클래식

초판 1쇄: 4월 25일 2012년

독서 기간: 2월 17일 2018년

추천인: 

소감:

인상 깊은 구절:

어린 왕자
1. 어른들 모두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른들이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2. 아이들은 어른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우리에게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3. "오직 하나뿐인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수백만 개의 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예요. 그는 마음속으로 '내가 사랑하는 꽃이 저 별 어딘가에 있겠지.......' 생각할 테니까요."

4. "하지만 불행하게도 양이 그 꽃을 먹어 버린다면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별이 빛을 잃어버린 기분일 거라고요! 그런데도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요?"

5. "그때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꽃의 말이 아닌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했는데....... 그 꽃은 나에게 향기를 주고 마음을 환하게 해 주었어요. 떠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단순한 거짓말 뒤에 숨긴 연약한 마음을 알았어야 했어요. 꽃이 얼마나 모순된 존재인지....... 그때 난 너무 어려서 꽃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어요."

6. 내 감기는 그리 심하지 않아요. 서늘한 밤공기를 맞으면 오히려 좋을 거예요. 난 꽃이니까요."

7. 세 번째 별에는 술꾼이 살았다. 술꾼은 짧게 만났지만 어린 왕자를 몹시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린 왕자는 한 무더기의 빈 병과 술이 가득 찬 병을 앞에 두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술꾼에게 물었다.
"아저씨! 지금 뭘 하고 계신 거죠?"
몹시 우울한 표정으로 술꾼이 답했다.
"술을 마시고 있잖니."
어린 왕자가 물었다.
"왜 술을 마셔요?"
술꾼이 대답했다.
"잊기 위해서란다."
어린 왕자는 왠지 술꾼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뭘 잊고 싶은데요?"
술꾼이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부끄러움을 잊고 싶단다."

8. '가로등을 켜는 것은 마치 별 하나 꽃 한 송이를 탄생시키는 것과 마찬가지고, 가로등을 끄면 꽃이나 별을 잠들게 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유익한 일이야.'

9. "그리고 꽃도 한 송이 있어요."
"그래? 하지만 우리는 꽃을 기록하지 않는단다."
"왜요? 얼마나 이쁜 꽃인데요."
"꽃은 한순간일 뿐이잖니."
"한순간이라뇨? 그게 무슨 뜻이죠?"
"지리책은 아주 중요한 책 중의 하나지. 변하지 않는. 산이 자리를 옮긴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고, 바다가 마르는 일도 무척이나 드물잖니. 우리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만 기록한단다."
"그런데 한순간이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말이란다."
"그럼, 내 꽃도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거예요?"
"물론이지."
어린 왕자는 갑자기 후회되기 시작했다.
'내 꽃은 한순간일 뿐인데,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라곤 네 개의 가시가 전부인 꽃을 별에 혼자 남겨 두고 떠나오다니.......'

10. "언제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별이 빛나는 것일까? 내 별을 봐. 내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어....... 하지만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아."

11. "사람들은 어디에 있니? 사막은 좀 외로운 것 같아."
뱀이 말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12. 모든 길은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13. "그래. 지금 너는 나에게 수많은 아이와 다름없는 작은 소년에 지나지 않아. 난 네가 필요하지 않고, 물론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지. 나도 너에게 수많은 여우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야. 나한테 너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거고, 너한테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 거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많이 달라질 거야. 그러면 수많은 발소리 중에 네 발소리를 구별하게 될 거야. 다른 소리는 나를 땅속 깊이 숨게 하지만, 네 발소리는 마치 음악 소리처럼 나를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좋아하지 않아. 밀은 나에게 아무 필요가 없거든. 그래서 밀밭을 바라봐도 나는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어. 그건 슬픈 일이지. 하지만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밀밭은 내게 아주 근사한 광경으로 보일 거야. 밀밭이 황금물결을 이룰 때 네가 기억날 테니까. 그러면 나는 밀밭을 스쳐 지나는 바람 소리마저도 사랑하게 될 거야."

14.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여우가 대답했다.
"인내심이 필요해. 일단은 나와 좀 떨어진 풀밭에 앉아. 내가 하는 것처럼 이렇게. 내가 너를 살짝 곁눈질로 쳐다보면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 말은 수많은 오해의 원인이 되거든.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 때마다 넌 내게 조금씩 다가오게 될 거야."
다음 날, 어린 왕자는 여우를 찾아갔다.
여우가 말했다.
"매일 같은 시각에 오는 게 좋을 거야.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4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마침내 4시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그러면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돼. 그런데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잖아. 그래서 의식이 필요한 거라고."
"의식이 뭐야?"
여우가 대답했다.
"이것도 많이 잊은 건데, 의식이라는 것은 어느 날을 평소와 다르게, 어느 시간을 평소의 시간보다 특별하게 만드는 거야. 예를 들면 나를 쫓는 사랑꾼들에게도 의식이 있어. 그들은 매주 목요일이 되면 마을의 아가씨들과 춤을 추지. 그래서 목요일은 내게 편안한 날이야. 그날은 포도밭으로 산책하러 갈 수도 있어. 사냥꾼들이 매일 춤을 춘다면 항상 그럴 거야. 그러면 나도 그날이 그날이고 휴가라는 것도 없어질 테지."

15. 둘이 헤어질 날이 다가오자 여우가 말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네 잘못이야. 나는 네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네가 길들여 주길 원했잖아."
"그래. 그랬어."
"그런데 너는 자꾸 울려고 하잖아."
"그래. 맞아."
"길들여서 좋을 게 없어."
어린 왕자의 말에 여우가 대답했다.
"아니야. 그래도 좋은 게 있어. 밀밭의 황금빛을 사랑하게 되었잖아."
여우가 이어 말했다.
"장미들에게 다시 가 봐. 너의 꽃이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그리고 다시 내게 와서 작별 인사를 해 줘. 그때 비밀 하나를 알려 줄게."

16. 어린 왕자는 다시 장미들을 찾아가서 말했다.
"너희는 나의 꽃과 하나도 닮지 않았어. 너희는 아무 의미가 없어. 누구도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도 길들지 않았으니까. 너희는 길들여지기 전의 여우와 같아. 길들여지기 전의 여우도 수많은 여우와 같았어. 하지만 이제 나의 친구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우가 되었지."
어린 왕자의 말을 듣고 장미들은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어린 왕자가 이어 말했다.
"너희는 아름답지만 의미가 없어. 누구도 너희를 위해 죽을 수는 없을 테니까. 물론 내 꽃도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너희와 똑같아 보이겠지. 하지만 너희 모두보다 내 꽃 하나가 내게는 더 소중해. 내가 그 꽃에게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워 줬으니까. 바람막이로 꽃을 가렸고 벌레를 잡아 줬으니까. 물론 두세 마리 벌레는 나비가 되라고 놓아 주긴 했지만....... 그리고 꽃이 투덜대거나 잘난  체를 해도 받아 줬고, 가끔 말을 하지 않을 때도 곁에서 지켜봤으니까. 내 꽃이었기 때문에!"

17.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하고 여우에게 돌아갔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잘 있어."
여우가 말했다.
"비밀 하나를 알려 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안녕, 잘 가."
어린 왕자는 여우의 말을 잊지 않기 위해 되풀이해 따라 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네 장미가 너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은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이번에도 어린 왕자는 여우의 말을 잊지 않으려고 따라 말했다.
"내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어서는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으니까. 너는 네 장미를 책임져야 해."
"나는 내 장미를 책임져야 해."
어린 왕자는 여우의 말을 되풀이해 웅얼거렸다.

18. 그때 세 번째 기차가 요란하게 지나갔다.
"저 기차 손님들은 처음 지나간 기차 손님들을 쫓아가는 거예요?"
"그들은 쫓아가는 게 아니란다. 기차 안에서 자거나 하품을 하고 있겠지. 아이들만이 유리창에 코를 바짝 붙이고 창밖을 내다볼 뿐이지."
"아이들은 알고 있는 거예요.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말이에요. 아이들은 봉제인형 하나를 찾느라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인형은 아이들에게 아주 소중하니까요. 그래서 인형을 빼앗으면 우는 거예요."
철도원이 말했다.
"아이들은 좋겠구나."

19. 별이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20. 나는 달빛 아래 펼쳐진 모래 언덕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어린 왕자가 덧붙였다.
"사막은 무척 아름다워요."
사실 그랬다. 나는 언제나 사막을 사랑했다. 모래 언덕 위에 앉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도 반짝이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에요."
나는 사막이 신비롭게 빛나는 이유를 깨닫고 깜짝 놀랐다.

21. '잠든 어린 왕자가 내게 이토록 감동을 주는 이유는 아마도 꽃 한 송이를 향한 그의 간절한 마음 때문일 거야. 마치 불꽃 같은 장미가 그의 마음속에서 빛나고 있어.'

22. 우리는 축제를 맞이한 사람들처럼 즐거워했다. 그 물은 분명히 우리가 먹던 물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별빛 아래를 행진한 끝에 찾아낸 도르래의 노래와 내 두 팔의 노력으로 얻은 물이었다. 그것은 마치 선물을 받았을 때처럼 내 마음을 기쁘게 했다. 유년 시절에도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린 반짝이는 불빛, 자정 예배 때 울려 퍼지던 음악, 사람들의 다정한 미소들이 있었기에 크리스마스 선물이 더 값지게 느껴지지 않았던가.

23. "눈에는 보이지 않아요. 마음으로 찾아야 해요."

24. "혹시 일 년이 되어 돌아가려고 했던 거니?"
어린 왕자는 내가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얼굴을 붉혔다. 아마도 내 말이 맞는 듯했다.
"아, 나는 겁이 난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아저씨는 이제 일을 해야 하잖아요. 아저씨의 기계가 있는 곳으로 가요. 나는 여기서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내일 저녁에 다시 와요."
나는 두려웠다. 어린 왕자가 들려주었던 여우 이야기를 생각났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길들면 눈물 흘릴 일이 생긴다는.

25. "꽃도 마찬가지예요. 아저씨가 어느 별에 있는 꽃 한 송이를 사랑하게 된다면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어느 별에나 꽃은 필 테니까요."

26. "밤마다 별을 바라보세요. 내 별은 너무 작아서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줄 수도 없어요. 하지만 그게 더 좋을 거예요. 그래야 아저씨가 어떤 별을 바라보든 즐거울 테니까요. 밤하늘의 모든 별이 아저씨의 친구가 될 거예요. 이제 아저씨에게 선물을 하나 줄게요."
이렇게 말하고 어린 왕자가 웃었다.
"아! 그래. 난 네 웃음소리가 좋아."
"내가 주려던 선물이 바로 그거예요. 물과 같은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지?"
"사람들은 누구나 별을 바라보지만, 모두에게 같은 의미는 아니에요.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빛일 뿐이지만 여행객에게 별은 길잡이가 돼주잖아요. 학자에게는 연구 대상이고 장사꾼에게는 별이 황금과도 같은 것이었어요. 하지만 별은 말이 없어요. 아저씨는 누구도 갖지 못한 별을 갖게 될 거예요."
"그건 또 무슨 말이니?"
"아저씨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볼 때 그 별 중 하나에 내가 살고 있을 테니 말이에요. 또 내가 그 별 중 하나에서 웃고 있을 테니 아저씨는 모든 별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그러면 아저씨는 미소 짓는 별을 갖게 되는 거잖아요."
어린 왕자가 또 웃었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무뎌지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아저씨도 언젠가 슬픔이 지나가면 나를 알게 된 것이 기쁨이 되겠지요. 아저씨는 언제까지나 내 친구로 남을 거고, 나와 함께 웃고 싶어질 거예요. 그래서 가끔 괜스레 창문을 열게 되겠지요. 아저씨가 밤하늘을 보고 웃음 짓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놀라면 '저 별들은 항상 나를 웃음 짓게 해.' 하고 말해 주세요. 친구들은 아저씨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내가 아저씨에게 아주 짗궂은 장난을 친 게 되겠네요."
그리고 그는 또 웃었다.
"끄건 별 대신에 웃을 줄 아는 조그만 방울을 잔뜩 준 셈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고 어린 왕자는 또 웃었다. 그러더니 곧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밤에는....... 오지 마세요."
"난 네 곁에 있고 싶어."
"난 무척 아파 보일 거예요. 죽어 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요. 그러니 오지 마세요. 올 필요 없어요."
"난 네 곁을 떠나지 않아."
그러나 어린 왕자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아저씨에게 오지 말라고 하는 건 뱀 때문이기도 해요. 뱀이 아저씨를 물면 안 되니까. 뱀은 아주 심술궃어서 장난삼아 아저씨를 물 수도 있거든요."
"그래도 네 곁을 떠날 수는 없어."
그러나 어린 왕자는 조금 안심이 된다는 듯 말했다.
"하긴 뱀이 두 번째 물 땐 독이 없긴 하지."
그날 밤 나는 어린 왕자가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는 조용히 떠나 버렸다. 내가 어린 왕자의 뒤를 쫓았을 때 그는 빠른 발걸음으로 서슴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아! 아저씨 왔네요."
그러고 나서 내 손을 잡으며 걱정했다.
"아저씨가 여기 온 건 잘못이에요. 많이 힘들 텐데.......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도 알다시피 내 별은 아주 멀어요. 이 몸으로 갈 수가 없어요. 너무 무겁거든요."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몸은 아무렇게나 버려진 껍데기처럼 보일 거예요. 낡은 껍데기만 남았다고 슬퍼할 건 없어요."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풀이 죽어 보였다. 하지만 곧 힘을 냈다.
"정말 근사할 거예요. 나도 별들을 바라볼 거예요. 모든 별이 도르래가 있는 우물로 보이겠지요. 모든 별이 나에게 마실 물을 줄 거예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재밌을 거예요. 아저씨는 5억 개의 작은 방울들을 갖고, 나는 5억 개의 우물을 갖게 될 거니까요."
그리고 그도 입을 다물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저기예요. 이제 혼자 갈게요."
어린 왕자는 무서웠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아저씨...... 난...... 내 꽃에게 책임이 있어요. 내 꽃은 아주 연약하고 순진해요. 하찮은 가시 네 개로 자신을 지키려고 해요."
나도 더는 그대로 서 있을 수가 없어 주저앉았다. 그가 말했다.
"자...... 이제 다 끝났어요......"
어린 왕자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몸을 일으켜 한 발 한 발 발을 내디뎠다.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순간, 어린 왕자의 발목에서 노란빛이 반짝였다. 그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무가 쓰러지듯 어린 왕자는 스르르 무너졌다. 모래밭이어서 작은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27. 벌써 여섯 해 전의 일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친구들은 내가 살아 돌아와서 기쁘다고 했다. 나는 몹시 슬펐지만, 친구들에게는 그저 피곤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이제는 슬픔도 웬만큼 무뎌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슬픔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로 무사히 돌아갔다고 확신한다. 다음 날 해가 떴을 때, 그의 몸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의 몸은 그다지 무겁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나는 밤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별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들은 5억 개의 작은 방울 소리를 낸다.
그런데 요즘 문득 떠올랐다. 어린 왕자에게 그려 준 양의 입마개에 가죽끈을 다는 걸 깜빡 잊었다. 끈이 없으면 양을 매 둘 방법이 없다. 궁금했다.
'어린 왕자의 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양이 꽃을 먹어 버렸을까?'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럴 리 없어. 어린 왕자가 밤이면 밤마다 꽃에게 유리 덮개를 씌워 주고, 양도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그러면 나는 행복해진다. 그리고 밤하늘의 모든 별이 내게 미소 짓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또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구나 가끔 방심할 때가 있잖아. 그러면 큰일인데. 어느 날 밤 유리 덮개를 씌우는 걸 잊었는데, 양이 밤에 소리 없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러면 작은 방울이 눈물방울로 변한다. 참으로 신기하다.
정말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어린 왕자를 사랑하는 여러분이나 나나 잘 알지 못하는 양 한 마리가 장미를 먹었을까 먹지 않았을까 상상하는 것에 따라 세상이 아주 달라 보이니 말이다.

28. 하늘을 올려다보라. 양이 장미를 먹었을까? 먹지 않았을까? 대답에 따라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것이다. 이 그림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풍경이다. 어린 왕자가 이 세상에 왔다가 간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자세히 봐 두었다가 언젠가 아프리카 사막을 여행하게 되면, 이와 똑같은 풍경을 꼭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 그곳을 지나게 되거든 부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별빛 아래서 기다려 보라.
그때, 한 아이가 다가와 미소 지으면, 그 아이가 황금빛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있다면, 그리고 당신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러면 내게 친절을 베풀어 내가 마냥 슬퍼하고 있지 않도록 한 통의 편지를 보내 주길 부탁한다.
그가 다시 돌아왔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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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화월선


처음 보면 우연이고

또 보면 인연이라지.

그 인연 넘고 넘어
운명까지 이어지도록

두근두근 설레이는
이 마음을 사랑해야지.



11월 25일 2017년

토요일 오전 1시

눈을 보고 설렘 가득, 화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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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민다, 사랑일까

화월선


스민다.

사랑일까.
그런가보다.

스미는 사랑을
심고 키워
꽃이 피고

꽃잎만 곱게 엮어
밤하늘에 던지면

이 밤이 매서워도
단비는 곱게 내려
꽃길이 펼쳐지고
향기가 가득하여
우리 추억 영원하리.


2월 17일 2018년
토요일 오후 10시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화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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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 8, 야마오카 소하치


제목: 대망 8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

출판사: 동서문화사

초판 1쇄: 1970년 4월 1일

2판 1쇄: 2005년 4월 1일

2판 14쇄: 2012년 3월 1일

독서 기간: 2월 16일 2018년

추천인: 


소감:

인상 깊은 구절:


상중의 잉어

1. "이시다님, 세상에는 새하얀 사람도 새까만 사람도 없소. 하지만 아녀자는 억지로 그렇게 정하며 상대하고 싶어하지. 기타노만도코로님이 만일 명백하게 이에야슨느 적이라든지 자기 편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여성으로서 뛰어난 분별이 있으신 분......반신반의라도 좋소. 반신반의라면 뒷일의 대비에 소홀함이 없을 것이고, 만약 실수가 있더라도 잘못이 반으로 끝나오. 그렇지 않소?"


구름 움직이다

1. "저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중장님 아내입니다."


2. "호랑이 입에 뛰어들 때까지 토끼는 자신의 약함을 모르는 게 아닐까요."


3. "칭찬할 만한 인물은 세상에 그리 흔하지 않아. 그런데 칭찬하는 건 마음에도 없는 아부, 상대에 대한 모욕이다."


4. "사람은 결코 사람을 얕잡아 보아선 안돼. 자신감을 잃게 하는 욕설이나 꾸지람도 삼가야 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칭찬만 하는 것도 무책임한 짓. 칭찬하면 사람들은 대게 강아지처럼 꼬리치겠지. 다이코는 그 호흡을 잘 알고 있어서 인심을 모으는 데 이를 곧잘 썼다. 그러나......나는 달라. 칭찬하지 않는다. 뜻없이 칭찬을 늘어놓는 것은 상대를 모욕하는 일로 보기 때문이야."


5. "지금의 나는 달이라고 했어. 여기저기에 구름이 낀 하늘의 달 말이야."

"하늘의 달......이란 말씀이신가요."

"그렇지. 구름에 따라 초생달로도 보이고, 저물어가는 그믐달로도, 열흘쯤 된 달로도 보일 거야. 하지만 보름달로는 보이지 않아, 구름이 많으니까."


에도의 각오

1. "돈으로 말미암은 고생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2. 기회는 아직 거기까지 무르익지 않았다.


스쳐서 울리는 것

1. 경계와 당황이 엇갈리는 감정을 어떻게 억누를지 초조해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소데도 잠자코 있었다. 이러한 경우 더 이상 추구하면 위험했다. 남을 용서하지 않는 성격인 남자의 약점은 곧잘 이치의 옳고 그름을 초월한 노여움이 되어 터져나오는 법이다.


2. '만일 그 엄동의 대지에 새 봄의 싹틈을 기대하며 헛되이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하나의 결의

1. "이미 살 수 없다, 십중팔구 베어져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 말할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그런데 살려줄 테니 이야기하라구요. 호호......살려준다고 하는데 어찌 미움받을 참된 소리를 하겠어요. 그런 계산도 못하는 분이야, 대감님은......"


찻잔의 마음

1. "인간은 곤혹의 밑바닥에서 이따금 혼잣말을 중얼대는 법이다. 그러나 그것이 혼잣말인 한 자기 사색의 울타리 안에서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런데 들어주는 이가 있어 때로 대꾸하며 맞장구쳐 주면 크게 창문이 열리는 경우도 있다. 지금의 오소데와 고에쓰의 대화는 그 역할을 한 모양이다. 결국 오소데는 고에쓰가 되돌려주는 메아리에 의해 자신을 비판하고 자기의 지혜를 꺼내온 모양이다.


기회 무르익다

1. 그날 밤 두 사람은 밤늦도록 이별을 아쉬워했다. 어느 쪽이나 주량이 넘도록 마시고 50년에 걸친 과거를 회상하며 서로 흠뻑 취했다. 도리이 모토타다는 벌써 엄숙히 죽음을 내다보고 있다.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이에야스도 마찬가지였다.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서 자신은 분명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히데요시가 세상떠난 뒤 반년만에 어지러워진 천하를 그의 손으로 다시 굳건히 할 수 있느냐? 아니면 50여년의 은인자중(隱忍自重), 괴로움을 쌓아온 귀중한 생애를 마쓰나가 단조나 아케치 미쓰히데처럼 헛된 수고로 끝장낼 것이냐......

'과연 이것은 큰 도박임에 틀림없다......'

이따금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고 울고 웃었다.


2. 개인의 기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새로운 계획은 봄눈보다 더 허무하다고 술회하듯 의견을 말했다.


3. 기회가 이미 무르익었다고 판단하여 시위에서 화살을 날려보냈으나, 이에야스에게 이번 계획은 무조건 낙관적인 것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마가와 요시모토며 다케다 신겐과 같은 최후를 맞을지도 모른다. 59살된 육체의 피로는 싸움터에서 지내기에 적합지 않으며, 도중에 한가롭게 들놀이삼아 즐기던 히데요시도 히젠에서 나고야까지 가는 동안 눈에 띄게 부쩍 늙어가던 모습을 눈으로 똑똑히 보아왔다. 그러므로 똑똑한 세상사람들에게 이렇게 보이게 되는 게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무엇이 좋아서 이제 새삼 그따위 싸움을 하러 가는가......"

간토 8주가 손 안에 있고 가문이 멸망할 염려는 이제 없다. 만족할 줄 아는 자라면 은퇴해 여생을 즐기는 게 인생의 명인(名人)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새삼 모든 것을 걸고 결전을 벌이려 한다. 아마 세상에서는 이에야스를 끝없는 야심가라고 평하리라. 그 가운데 누구보다도 깊이 히데요시를 이해하고 있는 고다이인의 이렇듯 은근한 성원은 캄캄한 밤에 비쳐드는 한 줄기 빛처럼 여겨졌다.


4. 생각해 보면 기요스의 후쿠시마를 비롯하여 이들 여러 장수들은 모두 이에야스를 누르기 위해 배치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한결같이 이에야스 편이 되어 있다. 그 옛 영지를 다스려 보고 비로소 이에야스의 숨은 일면을 깨달아 깊이 탄복한 게 틀림없으리다.


파멸의 진리

1. 요시쓰구는 숨도 쉬지 않고 있는 듯 조용히 물었다.

"그럼, 내대신을 적으로 삼을 생각이시오?"

"짐작하시는 대로."

"미쓰나리님."

"무슨 말씀이오?"

"귀하는 설마 다이코 전하의 말씀을 잊지 않았을 테지요."

"그렇소. 이에야스와는 태생이 다르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소."

"다이코 전하는 우리들에게 늘 이런 말씀을 하셨소......이에야스를 예사 인물로 보아서는 안된다. 내가 볼 때 그야말로 진정 지용(智勇)이 겸비된 자, 그대들은 이에야스를 좋은 상담역으로 생각하여 언제나 친숙하게 지내라고 하셨소."

"그런 말씀을 분명 하신 적 있었지요."

"미쓰나리님......귀하는 그 이에야스를 상대로 싸우면 모든 일이 끝장날 것으로 생각지 않으시오? 다이코 전하도 손대지 못했던 분에게 싸움걸어 이기려 생각한다는 것은 미친 노릇이라고 여기는데, 어떻소......?"

미쓰나리는 순간 유록빛 천에 싸인 눈없는 얼굴을 지그시 지켜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겠지요."

"그럼, 질 줄 알면서 싸우겠다는 거요?"

"그렇소."

"그리하여 편드는 사람들에게 떳떳하리라고 생각하오?"

"떳떳치 못하겠지요."

요시쓰구는 비로소 낮게 신음했다.

"흠. 그럼, 떳떳하지 못하더라도 싸우겠다는 거요?"

"그렇소."

"편들 사람이 적을 거요. 이에야스님은 가문으로 보나 관직으로 보나 귀화와 비교도 되지 않소. 지금 일본 땅에서는 겨룰 자 없는 대영주, 간토 8주 300만 석의 정병을 거느렸으며 귀화와 정반대로 영주들은 물론 미천한 자를 길에서 만나셔도 일일이 극진하게 인사하시오. 귀하는 거만하고 언동이 모날 뿐 아니라 자기 편도 곧 적으로 돌리는 성품......이런 때 지는 게 뻔한 싸움을 벌인다면 어떻게 되겠소? 마침내 내 편에서 목이 잘려 후세에까지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말하는 편도 대답하는 편도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것도 각오하고 있소."


2. 요시쓰구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지는 것도 각오, 자기 편에 폐를 끼치는 일도 각오, 스스로 어떤 치욕을 받는 것도 각오하고 있다고 잘라말하는 데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충고는 일체 필요없다고 거만하게 버티어 보였던 지난날 미쓰나리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런 때 미쓰나리는 한 조각의 이성도 갖지 못한 감정덩어리로 보였었다. 이 괴이한 성격 때문에 얼마나 많은 적을 만들어온 것인지.


3. "그렇지요. 모리 가문에 유리한 일이 못되면 편들 수 없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도요토미 가문을 위해, 대의를 위해......라는 것은 이를테면 말의 꾸밈새로, 이것도 불필요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의 찬성을 얻기 위해서는 이 꾸밈새도 중요한 무기의 하나지요. 그러나 꾸밈새만으로 싸움을 할 수는 없습니다. 심술궃은 것 같지만 한 번 그 꾸밈새를 벗기고 생각해 보는 것도 대사를 치르는 데 긴요한 일이지요."


동행서탐

1. 나오카쓰도 가쓰시게도 후지타의 꾸밈없는 발언에 온싱경을 지그시 모으고 있다.

"이거 참, 놀라운 질문을 하십니다. 칼가게에 칼을 사러 갔다가 좋은 칼과 나쁜 칼을 내놓는다면 누구든 좋은 칼이 탐날 것입니다."

"그럼, 그대는 나를 좋은 칼로 여긴단 말이지. 그 이유를 말해 보게."

똑바로 질문받고 후지타의 둥근 얼굴이 순간 벌개졌다.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더듬거리며 그는 말했다.

"저는......내대신님처럼 큰 도박을 용감히 하시는 분을 본 적 없습니다."

"허, 도박이라니 뜻밖이로군. 도박이라면 나보다 미쓰나리나 가네쓰구 편이 더 잘하는 도박사 아닌가."

후지타는 고개를 흔들며 가로막았다.

"아니지요! 도박의 크기가 다릅니다. 가네쓰구는 고작해야 가게카쓰의 고집에 걸고, 미쓰나리는 도요토미 가문과 자기 야심에 걸지요. 그러나 내대신님께서 걸고 계시는 건 신불의 뜻에 맞느냐 안맞느냐는 것. 맞지 않는다면 어디서든 벌을 내려다오!......라는, 도박의 크기와 용감성이 비교도 안됩니다."

"허, 그렇다면 내가 큰 도박을 하고 있다는 건가. 그럼, 그대는 내가 우에스기, 이시다 쌍방에서 공격받더라도 내 쪽에 걸 텐가......"

"내대신님, 그 일이라면 염려마십시오. 가게카쓰와 이시다가 양편에서 내대신님을 칠 리 없습니다. 그러니 물론 내대신님에게 걸지요......"


2. "사람의 한평생에 눈 앞의 승패나 야심을 떠나 움직이는 일이 한두 번은 있어도 좋은 법이야."


서쪽의 도전

1. 모토타다는 반쯤 쉰 목소리로 담담하게 모두들을 둘러보았다. 비장감은 때로 조용한 담소 속에 한결 깊어지는 경우가 있다. 모토타다의 목소리며 표정에는 조금도 동요하는 데가 없다. 그것이 오히려 모두들의 머리 위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펼쳐가는 것 같았다.


돌풍 전야

1. 어떤 종류의 불평이나 반항심은 같은 인간이면서 자기 쪽이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싹튼다. 자기에게 상대보다 더 재능이 있다고 믿으면서 그 상대에게 눌린다고 생각하는 만큼 불행한 생활은 없다.


2. 이것을 이면에서 보면 마음의 가난에서 비롯되는 열등감에 지나지 않는다.


3. "지금의 말씀을 듣는다면 장수들은 아마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용기가 솓겠지요. 승부는 이제 참으로 결판났다고 하고 싶군요. 미쓰나리와 요시쓰구 같은 무리는 대감님에게 불원천리 달려오려는 사람들을 억지로 오사카에 붙들어놓았습니다. 그와 반대로 대감님은 이곳에 계신 분들에게까지 마음대로 돌아가라고 하시오. 이 두 사람이 지닌 각오의 차이도 모를 만큼 어리석은 무장이 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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