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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 6, 야마오카 소하치
제목: 대망 6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
출판사: 동서문화사
초판 1쇄: 1970년 4월 1일
2판 1쇄: 2005년 4월 1일
2판 14쇄: 2012년 3월 1일
독서 기간: 1월 23일 ~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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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 5, 야마오카 소하치
제목: 대망 5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
출판사: 동서문화사
초판 1쇄: 1970년 4월 1일
2판 1쇄: 2005년 4월 1일
2판 14쇄: 2012년 3월 1일
독서 기간: 12월 30일 ~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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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 4, 야마오카 소하치
제목: 대망 4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
출판사: 동서문화사
초판 1쇄: 1970년 4월 1일
2판 1쇄: 2005년 4월 1일
2판 14쇄: 2012년 3월 1일
독서 기간: 12월 24일 ~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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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 3, 야마오카 소하치
제목: 대망 3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
출판사: 동서문화사
초판 1쇄: 1970년 4월 1일
2판 1쇄: 2005년 4월 1일
2판 14쇄: 2012년 3월 1일
독서 기간: 12월 18일,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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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 2, 야마오카 소하치
제목: 대망 2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
출판사: 동서문화사
초판 1쇄: 1970년 4월 1일
2판 1쇄: 2005년 4월 1일
2판 14쇄: 2012년 3월 1일
독서 기간: 12월 16일 ~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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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구절:
제 3장: 잠자는 호랑이
1. "대장의 단련과 졸개의 단련은 근본부터 달라야 해. 어때, 다케치요도 차라리 누군가의 부하가 되는 게?"
다케치요는 대답하지 않았다.
"부하가 되면 마음편하지. 목숨도 입도 주인에게 맡기면 되니까. 그런데 대장이 되면 그렇게 안되거든. 무술은 물론 학문을 닦아야 하고 예의도 지켜야 해. 좋은 부하를 가지려면 내 식사를 줄여서라도 부하를 굶주리게 해서는 안되지."
2. "가신들에게 빚이 있는 주군은 암군(暗君), 가신들이 의지하고 그 믿음에 응하는 주군은 명군(明君)이라고 이 모토타다는 생각합니다. 이래도 저더러 대신 만나라고 분부하시고 빚을 더 쌓아가시렵니까?"
다케치요는 슬며시 모토타다의 시선을 피해 얼굴을 돌렸다. 그렇다. 그저 위함만 받아서는 빚이 된다. 의지하고 매달릴 가치가 있는 주군이라야 진정한 주군이리라.
제 14장: 난세의 모습
1. "할아범, 내 결심은 이미 정해져 있어. 이야기해 줄 테니 말내면 안돼."
"결심…… 이라니요?"
"나는 처자에게 속박되지 않겠다. 그 영역에서는 이미 벗어났어."
사카이는 얼굴을 바짝 가까이 하고, 모토야스의 번뜩이는 눈에 비치는 별을 응시했다.
"나를 속박하는 것은 단 하나, 오카자키에 남은 가신들이 오늘날까지 해온 인내다. 알겠나, 내 말을?"
"예,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슨푸 성을 떠난 순간부터 그대들 것이 되리라. 아내도 생각하지 않겠다. 자식도 버리겠다……."
"주군!"
"그것으로 나를 용서해 줘. 그리고는 싸울 뿐이야."
"……예."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겠다. 승패며 생사에 대한 것을 인간 힘으로 어쩌겠는가. 이것만은 내 힘이 미치지 못하고, 요시모토나 노부나가의 힘도 미치지 못한다. 할아범! 하늘을 봐."
"예."
"숱한 별이 반짝이고 있잖나."
"예."
"봐, 또 하나 떨어졌어. 저 속의 어느 것이 내 별인지 그대는 아는가?"
사카이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 떨어질지 모르면서 다만 반짝이고 있을 뿐이다."
"할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리시겠다는 분부이신지."
"아니, 할일을 다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하는 것임을 깨우치라는 거야."
"예."
"살아남으려고 떨어지는 순간까지 저마다의 지혜만큼, 힘만큼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게 인강의 본성이지. 나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믿어줘. 그리고 나에게 지혜도 힘도 없다면, 그때는 모두 함께 죽을 결심을 해 줘."
제 21장: 오케 골짜기 전주(前奏)
1. 모든 인생을 걸고 하는 도박만큼 상쾌한 것은 없다. 더욱이 그렇게 하리라 여겼던 노부나가가 예상한 대로 주사위를 던지려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도키치로 역시 온갖 지혜를 쥐어짜 이 승부에 임해야 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달릴 터인 노부나가라는 폭주마(暴走馬)에 자기 생애를 걸었던 것이다.
제 22장: 용호(龍虎)
1. 노래를 마치자 작은북을 치고 있는 북잡이에게 부채를 휙 내던지듯 건네고 노부나가가 칼로 베는 목소리로 물었다.
"원숭이! 깨우러 왔냐!"
"예."
"도키치로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마루네는 이미 떨어지고 와시즈는 고전하고 있다 합니다."
노부나가는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물었다.
"요시모토의 본대는?"
"오늘 아침 구쓰카케를 출발, 오타카 성으로 향하는 게 확실하다고……야나다의 부하가 가져온 정보입니다."
노부나가는 싱긋 웃으며 거듭 세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홑옷 웃통을 홱 벗고 벌거숭이 배를 탁 치며 노호(怒號)같은 소리를 질렀다.
"갑옷을 가져와!"
세 측실은 깜짝 놀라 얼굴을 마주보았지만, 노히메 부인만은 과연 사이토 도산이 '형제자매 가운데 으뜸'이라고 사랑해 온 딸이니만큼 무릎을 세우고 야무지게 명했다.
"준비해 놓은 갑옷을 어서 이리로 가져오너라."
"예."
두 근위무사가 튕기듯 일어나 나간다.
노부나가는 배를 탁 치며 우뚝 선 채 다시 외쳤다.
"밥!"
"저,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아침식사를 막 끝낸 참이었으므로 오루이 부인이 되물었을 때, 끝자리의 미유키가 구르다시피 일어나려 했다.
"이봐요……."
노히메는 그 미유키를 제지하고 시녀에게 말하듯 엄하게 지시했다.
"중대한 출전이니 준비한 술과 승리를 기원하는 밤을 잊어선 안돼요."
갑옷을 내오자 노부나가는 도키치로조차 눈을 둥그렇게 뜰 만큼 재빠른 속도로 그것을 입었다.
슨푸의 용은 이미 오와리에 이르고 있었다. 기요스의 호랑이는 끓어오르는 투지를 누르며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호랑이는 들에 있는 것, 구름 속의 용에게 싸움걸지 않고 그가 먼저 지상에 내려설 때를 기다려 도약을 개시한다. 적도 아군도 농성하는 것으로 믿게 해놓고서.
갑옷을 입고 나자 노히메 부인이 옆에서 물었다.
"칼은 어느 것을?"
"미쓰타다(光忠), 구니시게(國重)!"
그 응수는 마치 불꽃이 튀는 것 같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조금도 빈틈없는 마음의 합일(合一)이 느껴진다.
노히메가 묻고 노부나가가 대답하자, 오른팔이 없는 하세가와가 어느새 미쓰타다 소도를 내밀고 있었다.
"예, 미쓰타다는 여기에."
노부나가는 싱긋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구니시게는?"
"아마 그것일 거라고 짐작하고, 구니시게도 여기에."
"하하하……."
노부나가는 높다랗게 웃었다.
"이겼다, 원숭이!"
"예."
"하세가와까지 건방지게 내 마음을 읽었어. 이겼다, 이 싸움은!"
애도 하세베 구니시게를 받아 옆에 놓자, 미유키가 날라온 작은 상이 노부나가 앞에 놓였다.
그러나 그는 갑옷궤에 걸터앉으려 하지 않고 우뚝 서 있었다. 그것을 보고 노히메는 재빨리 잔을 내밀어 자기 손으로 술을 따랐다.
"자, 잔을."
노부나가는 단숨에 마시고 이번에는 오루이가 바치는 밥공기를 들었다. 그리고 네 아리를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전쟁이란 이렇게 하는 거다. 잘 봐둬."
역시 꾸짖는 말투였으므로 기묘마루만이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겁먹은 듯 유모에게 착 달라붙었다.
"하하하……."
노부나가는 순식간에 두 공기를 먹고 젓가락을 놓는 것과, 투구를 잡는 것과, 고둥을 불라고 명령하며 칼을 움켜잡는 것과 내전을 달려나가며 외치는 것이 동시였다.
"원숭이, 따르라!"
도키치로는 깡충 뛰다시피 노부나가의 앞장을 섰다.
"타실 말은 질풍이다! 출전이시다. 서둘러라, 서둘러."
고함치며 도키치로는 문득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 불 같은 성미로 열흘 가까이 자신을 꾹 억눌러온 노부나가의 심정을 생각하자 일종의 감동이 번갯불처럼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여기까지 할 수 있는 상대라면, 이 도키치로 역시 죽어도 좋다…….'
뒤에서 고동이 연거푸 울리고 있었다.
"출전이다! 주군이 벌써 말에 오르셨다."
회의실로 모여들던 여러 장수들이 허둥지둥 무장을 갖추고 있을 무렵, 노부나가는 벌써 애마인 질풍을 몰아 성문에 이르고 있었다.
제 23장: 질풍
1. 노부나가는 난세를 바로잡는 것은 모든 게 '힘-'하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신하들을 다스리는 것은 덕입니다."
히라테 마사히데가 살아 있을 때 그렇게 간언하자 노부나가는 코웃음치듯 웃었다.
"난세란 낡은 도덕이 가치를 상실했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덕이란 뭔가. 덕이란……앗핫핫하."
노부나가는 '덕'이란 무엇인지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모두 깨닫게 될 때 난세가 끝난다고 비웃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힘으로 처리했다. 하나하나 사람의 의표를 찔러 혈육 사이의 다툼도 중신의 배신도 벌벌 떨도록 만들어 굴복시켰다.
그래서 지금 노부나가의 영내에는 도둑마저 종적을 감추고 있었다. 위로는 엄하고 아래로는 너그러운 것도 원인이지만, 도둑의 무리까지 노부나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제 29장: 주춧돌
이 두 사람이 말고삐를 나란히 기요스 성문을 나설 때 두 집안의 근시들은 이미 으르렁대지 않았다. 노부나가에게는 이와무로 시게요시와 하세가와 쿄스케. 모토야스에게는 도리이 모토타다와 혼다 헤이하치로. 두 사람씩 근시를 거느리고 아무 불안도 없는 명랑한 표정으로 노부나가와 모토야스는 아쓰타로 향했다.
"우리 둘만이 되고 싶었소."
수행원을 일부러 뒤에 떨어지게 하고 노부나가가 싱긋 웃자 모토야스도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와와 오와리의 국경 말인데."
"분명하게 정해 놓아야 되겠지요."
"내 쪽에서는 다키가와 가즈마스와 하야시 사도를 보내겠소. 그대 쪽은?"
"이시카와 가즈마사와 고리키 기요나가를."
"장소는 어디가 좋겠소?"
"나루미 성이 어떨까요?"
"좋소, 그렇게 정하지! 딱딱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그치세."
겨우 몇 초 동안에 그들의 교섭은 모두 끝났다.
어느덧 나고야 성 망루가 남빛 겨울하늘 속에 뚜렷이 떠오르고, 햇볕을 받은 덴오 사 기와지붕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것은 꼭 한 번 물어보려고 생각한 일이었는데."
"무엇이오? 사양하지 말고 말하오."
"노부나가님은 덴카쿠 골짜기 싸움 뒤 어떤 순서로 가신을 칭찬하셨습니까?"
노부나가는 웃었다,
"후후후, 교활한 사내로군, 그대는. 그것을 묻는 건 노부나가의 수법을 모조리 알아내려는 거겠지. 그러나 숨기지 않겠소. 난 첫째로 야나다 마사쓰나를 칭찬해 주었소."
"어째서지요?"
"그의 척후가 때를 놓쳤다면 승리도 없었을 거요."
"둘째로는?"
"맨먼저 창을 들이댄 핫토리."
"목을 친 모리는?"
"셋째."
"흠."
두 사람의 문답은 여기서 끊어졌다. 이것만으로도 모토야스는 노부나가의 부하 다루는 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목을 치지 못하는 것은 시운(時運)이고, 맨먼저 창을 들이댄 용맹이야말로 그 위에 두어야 하는 것.
제 38장: 쌍학도
1. "스즈키."
"예."
"싸움터에서 목숨을 버린다면 또 모르되, 잉어 한 마리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분하지 않나, 그대는?"
스즈키는 다시 눈을 뜨고 이에야스를 쳐다보았다. 맑은 심경임을 환히 알 수 있는 잔잔한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주군! 싸움터에서 죽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평소의 충성에 목숨을 거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라고 저는 아버님에게 가르침받았습니다."
"그것을 묻는 게 아니야. 잉어 한 마리 때문에 베이는 게 충성이냐고 묻는 거다."
"허참, 잘못이라고 여겼다면 진작 달아났겠지만, 충성이라고 생각하므로 목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한 뒤의 일이란 말이지?"
"스즈키가 베이지 않는다면 언젠가 다른 누군가가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차라리 사소한 일, 중대한 일은 그게 아닙니다."
"건방진 소리. 말해 봐, 생각하는대로."
"두렵게 여기는 상대에게서 보내져온 선물이면, 잉어 한 마리와 가신 한 사람의 값어치 계산도 못하게 되는 그런 주군이라면 큰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잉어를 거느리고 싸움을 할 수 있습니까? 스즈키의 죽음은 주군께 그것을 생각하게 하는……것만으로도 충분히 충성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분이 주신 것이든 기물(器物)은 기물, 잉어는 잉어일뿐 인간 이상의 것이 아님을 아십시오."
이에야스는 긴칼을 겨누어든 채 희미하게 볼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러나 그것과 이것은 다르니, 주군께서 해선 안된다고 말씀하신 명을 어긴 저의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를 처벌하시고, 앞으로는 소홀하신 명을 내리지 마시도록 한결같이 부탁드리는 바입니다……그럼, 베십시오."
"나이토!"
이에야스는 다시 나이토를 부른 다음 말을 이었다.
"벨 것까지 없다. 이 칼을 저기 넣어둬라."
"예."
"스즈키."
"옛!"
"내가 잘못했다. 내가 미숙했어. 앞으로는 취소해야 할 명령은 내리지 않겠다. 오늘의 취소는 웃어넘겨다오."
스즈키는 홱 물러나듯하여 꿇어엎드렸다.
"비록 어떤 분이 주신 것이더라도 잉어는 잉어……라고 잘 말했다. 이것은 노부나가님 호의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심정 다음에 곧 있어야만할 중대한 마음가짐! 내가 미숙했어. 좋아, 앞으로 잉어는 잉어로 다루라."
말하고 나서 이에야스는 곧 마루로 올라갔으나 스즈키는 여전히 땅바닥에 엎드린 채 있었다.
별빛으로는 그 어깨의 흔들림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울고 있어 얼굴을 들지 못하는 것임을 잘 알 수 있었다.
제 39장: 암독수리 성
1. 그녀의 마음은 이제 알았다. 조용히 농성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차례차례 가신들을 망명시키고 마지막으로 자결할 게 틀림없다.
이에야스는 생각했다.
'얄미운 여자다-'
항복하여 이에야스 가까이에서 살아가기보다는 열렬한 향기를 남기고 죽는 편이 훨씬 더 이에야스의 마음에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이에야스는 평생 동안 그녀를 잊을 수 없게 되리라.
"벨 것 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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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동서문화사
초판 1쇄: 1970년 4월 1일
2판 1쇄: 2005년 4월 1일
2판 14쇄: 2012년 3월 1일
독서 기간: 12월 13일 ~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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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구절:
제 4장: 봄볕
1. "오, 또 꾀꼬리가 우는군. 유리, 고자사. 들었느냐?"
"네."
두 사람은 귀를 기울였다.
"지불당(持佛堂) 성벽 밖에서 우는가 봅니다."
"그래, 그 언저리인 것 같아……. 저 꾀꼬리는 어째서 저 담장 밖에 오는 것일까?"
"매화가 만발해 있기 때문이겠지요."
"유리-"
"네, 마님?"
"너는 매화가 꾀꼬리를 부르는 것을 보았느냐?"
유리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 매화는 그저 가만히 피어 있을 뿐……. 꾀꼬리를 부르지는 않아. 오다이도……."
그리고는 천진스럽게 고개를 갸웃했다.
"웃어도 괜찮겠지, 응, 유리?"
"마님."
2. 상대의 불행을 기뻐하는 오히사와, 마음을 비운 슬기로움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오다이의 슬픔이 히로타다의 가슴에 아름다움과 추한 그늘을 선명하게 만들어갔다.
3. 유리와 스가가 놀라며 그를 맞았으나 히로타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침실로 들어갔다.
"다이!"
불러놓고 히로타다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하얀 이불깃 속에서 검은 머리만이 내다보이고 그것이 세차게 물결치고 있다. 아직 14살 밖에 안 되는 소녀였다.
"다이……."
히로타다는 그 머리맡에 살며시 몸을 굽히고 말했다.
"용서해라, 내가 나빴어."
별안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히로타다는……. 술버릇이 나쁜 모양이야. 앞으로는 삼가도록 하지, 용서하라."
이불이 더 한층 세차게 떨리더니 거기서 살며시 오다이의 얼굴이 내다보였다. 눈언저리가 젖어 있다. 입매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의지로 슬프게 일그러져 있었다.
"울지 마, 이제 그만 울어."
"네…… 네."
"내가 나빴어, 울지마."
이 대화는 옆방에 있는 유라와 스가에게도 손에 잡힐 듯 들렸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발그레 볼을 물들이며 즐거운 미소로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봄볕이 마침내 꽃을 품은 모양이다…….
제 7장: 덫과 덫
일그러진 시대는 그대로 일그러진 사람을 만든다. 이미 혈육의 살상을 도리에 어긋나는 일로 여기지 않는 난세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온갖 모략이 필요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루의 양식을 위해 허덕이는 농민이나 영주나 모두 평등했다. 그처럼 역사상 보기드문 난세에 태어난 것이다. 오다 편에 붙는 게 살아남는 길이라고 믿는 노부모토로서는, 만일 오다 쪽에 가담하기로 결정되면 자기를 벨지도 모르는 아우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베지 않으면 안될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제 9장: 아즈키 고개
"기원 하자. 올해는 범해야. 범처럼 늠름하고 강한 자식을 점지해 주십사고 신불에게 기원하자. 내 자식에게는 이토록 분한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네……."
"이마가와에 의지하지 않고, 오다에게 굴하지 않고 혼자서 유유히 천하를 걸어갈 수 있는 자식……."
히로타다는 자신에게 부족한 꿈을 그리며 마침내 오다이의 손을 잡았다.
'이 싸움에서 어쩌면 전사할지도 모른다…….'
이마가와가 이기든, 오다가 그것을 물리치든 히로타다는 그 나름대로 무인의 기개를 보여주어야 했다. '죽음'은 결코 공상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자신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히로타다는 자신의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오다이의 몸에 애절한 정을 느끼며 아무 거리낌 없이 오다이의 목덜미에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오다이…… 부탁해. 이 히로타다에게 만약의 일이 생기더라도…… 당신은 반드시 살아줘. 태어나는 자식을 위해 살아야 해."
뜨거운 목소리로 속삭인 다음, 도톰한 오다이의 귓볼에 입술을 가져갔다. 오다이 역시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리며 히로타다에게 안겨들었다. 이런 때 우는 것이 히로타다의 마음을 얼마나 약하게 만드는 일인지 알면서도 억누를 수 없는 커다란 감정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제 16장: 전국(戰國) 부부
오다이의 흐느낌이 높아지자 히로타다는 무엇에 홀린 듯 말이 빨라졌다.
"왜 이리 알아듣지 못하나? 이 히로타다는 그대보다 더 슬퍼. 그러니 참아줘! 아무튼 뜻대로 안되는 게 뜬세상 일이야. 오늘이 이 세상에서의 이별이 될지도 모르겠어. 그렇지, 이별이 될 거야. 그러나 내세가 있잖아. 저 세상이라는 곳이 있잖아. 그대가 없어지면 내 건강은 오래 가지 못하겠지. 하지만 죽은 뒤 극락이라는 연꽃받침 위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겠어."
제 18장: 별리(別籬)
"이유를 말하지 않고는 안되겠군요. 그럼, 들어보세요."
"……."
"가리야의 오빠에 대해서는 여러분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어요. 조급하고 거친 성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정도면 내 마음을 헤아려주시겠지요."
"……."
"여러분에게 만일의 일이 생긴다면 다케치요가 자란 뒤 매정한 어머니였다고 내가 원망받게 될 거예요. 그토록 뛰어난 무공을 지닌 사람들을 일시적인 슬픔에 사로잡혀 적지로 끌고 가 비참하게 목숨잃게 한 못난 어미였다는 소리를 듣게 돼요."
번쩍 정신이 든 듯 가네다가 얼굴을 들고 모두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돌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오다이는 살그머니 눈시울을 눌렀다.
"조심은 미리 해야 하는 것……. 이것은 아버님이신, 다다마사님의 가르침이었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다케치요와 노부모토님은 외삼촌과 조카, 그 사이에 원한의 씨앗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게 나의 소임이라고 생각해요. 부탁이에요! 다케치요의 앞날을 위해 부디 돌아가주세요."
갑자기 남자들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의 어깨와 삿갓이 잔물결을 일으키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카이가 쥐어짜는 듯한 소리를 냈다.
"마님! 17살 나신 마님 앞에 부끄럽습니다……. 이 나이에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렇습니다. 성에는 우리의 소중한 다케치요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돌아갑시다. 돌아가서 오늘 마님께서 말씀하신 이 훈계를 잊지 맙시다."
오다이의 가마는 아베 사다지가 불러온 농부 손에 맡겨졌다. 오다이의 재촉을 받고 오카자키의 중신들은 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며 성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오다이는 가마를 메게 했다. 비로소 온몸을 죄어오는 고독에 흐느껴우는 소리가 가마 밖까지 새어나왔다.
오다이의 언니 히로이에 부인은 이런 배려를 하지 못하여 그녀를 전송한 16명의 호송자는 노부모토에게 하나도 남김없이 살해되었다.
하늘에 한 조각의 구름도 없는 날에…….
제 25장: 붉은 단풍
여기까지 말하고 셋사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문득 뜰의 녹음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녹음 속에 단 한 그루 붉은 단풍이 섞여 있지요?"
게요인은 의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거기에는 새싹 때부터 붉은 날개를 펼친 것처럼 새빨갛던 단풍잎의 붉은 색이 뚜렷이 눈에 어려보였다.
"저 단풍은 여름동안 모든 잎사귀 가운데 오직 홀로 붉은빛을 띠고 있었소. 다른 파란 잎들은 어째서 붉은색 단풍나뭇잎만 빨간 것일까 하고 웃고 있을지도 모르오. 허지만 때가 오면 주위의 나무들이 붉게 물들어 단풍나무도 언젠가 붉은색 속에 묻히게 되오. 그러면 어느 것이 단풍나무였는지 구별도 안되는 채 잊혀지고, 오히려 붉은색이 덜하다고 나무람받을지도 모르오. 나는 저 단풍이 되고 싶소! 그리고 단풍의 마음을 이어받은 무장을 얻고 싶소! 스님, 그것이 이 셋사이가 작은 안조 성에 집착하고 오카자키 가문에 특히 냉혹한 이유요. 아시겠소?"
제 30장: 서로 다가서는 자
"산노스케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다케치요가 다 먹으면 자기 몫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다케치요는 눈도 깜빡이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도쿠치요는 다케치요가 혼자서 다 먹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다케치요를 믿고 있었다. 즉 신(信)이 있었기 때문에 다케치요가 먹지 않으면 먹지 않으려고 했지……."
셋사이는 여기서 말을 끊고 자신의 눈빛이 다케치요의 나이를 잊고 엄격하게 변해가는 것을 의식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산노스케 역시 다케치요를 빋게 됐다. 잠자코 있어도 혼자서 다 먹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산노스케는 도쿠치요의 흉내를 낸 게 아니라 다케치요를 믿고 도쿠치요를 믿은 것이다. 알겠느냐? 신(信)이 있었기 때문에 그 얼마 안되는 식(食)이 살아나 세 사람의 목숨을 이을 수 있었던 거란다. 그런데 그 신(信)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셋사이는 여기서 다시 눈빛을 부드럽게 바꿨다.
"도쿠치요가 혼자 다 먹는다면 나머지 두 사람은 굶주리게 된다. 다케치요가 혼자 먹어도, 산놋케가 혼자 먹어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이 없어지면, 세 사람 모두 굶주림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그 식(食)이 싸움의 씨가 되어 오히려 피투성이 칼싸움으로 끌어들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다케치요가 무릎을 탁 쳤다. 어느새 몸을 책상 위로 쑥 내밀고 눈을 보름달처럼 크게 뜨고 있다.
대망 3, 야마오카 소하치 (0) | 2017.0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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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3, 박세길
제목: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3
작가: 박세길
출판사: 돌베개
신판 초판 1쇄: 2015년 7월 20일
신판 초판 2쇄: 2016년 3월 18일
독서 기간:12월 9일 ~ 12월 10일
추천인: 김효진 선생님
소감:12월 11일에 광주 망월동 5.18 국립묘지를 방문하기 전에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가야 되겠다 싶어 관련 책들을 수소문했고, 김효진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되었다. 한국사 교과서로 배운 한두 줄의 암기 거리가 아닌, 우리 시대의 비극으로, 그분들이 우리에게 남기신 거룩한 유산으로 5.18 민주화 운동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인상 깊은 구절:
제 6부: 항쟁의 불꽃
제 1장: 독재와 민주의 갈림길
제 1번: 군부의 재등장
1. 우리가 5.16쿠테타와 관련해 살펴보았듯이 한국에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일차적인 조건은 미국의 지지였다. 특히 미국의 직접적인 통제 아래 있는 군부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전두환 1은 바로 이 점에서도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우선 전두환은 미국 측이 마음 놓고 믿을 만한 열렬한 친미파였다. 아울러 전두환 자신 역시 일찌감치 권력에 대한 야욕을 가지면서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각별한 신경을 써왔다. (p. 15)
2. 널리 알려진 대로 위컴 2과 전두환은 특전부대 장교 출신으로 베트남전에서 함께 작전을 수행하며 깊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p. 16)
3. 아시아통으로 알려진 『뉴욕타임스』의 R. 헤롤런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12.12쿠테타 직후 주한 미군의 고관들이 정승화 3 직속 부하들에게 "역쿠테타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p. 19)
4. 즉, 미국은 전두환 일파를 적극 옹호하면서 아울러 군부 내에서 전두환 일파에 반항할 가능성을 적극 봉쇄하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p. 19)
5. 최규하 정부를 축출하고 일거에 정치권력까지 잡을 경우 박정희의 18년 독재에 강한 혐오감을 민중의 저항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18년에 걸친 박정희 군부독재는 우리 민중에게 군부독재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심어놓았다. 역설적이지만 박정희 군부독재가 역사에 기여한 점이 있다면 바로 이 점이다. 이 같은 박정희의 유산을 딛고 권력을 장악하자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따. 별 수 없이 전두환 일파는 좀 더디지만 확실한 길을 택하기로 했다. 그 결과 이들이 완전히 권력을 손에 넣기까지는 약 8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릴 쿠테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p. 20)
6. 전두환 일파는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다음에 나오는 세 가지 음모를 추진했다.
첫째, 민주적 개헌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둘쨰, 여론을 조작해 일반 민중 사이에서 '정국 안정을 책임질 수 있는 강력한 정부'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각계각층에 치밀한 정치공작을 전개했는데, 그 가운데 '언론조종반'이라는 것이 있었다. 언론조종반은 우선적으로 언론계의 중진들을 만나 회유공작을 실시하는 한편 보도검열단으로 하여금 조속한 민주개헌이나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야당, 재야, 학생운동에 대한 보도를 삭제하거나 이들의 행동이 안정을 깨뜨리는 폭력/파괴행위로 보도되도록 만들었다. 또 북한의 위협이 거듭 강조되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송두리째 망해버리겠다는 위기감이 조성되었다.
셋쨰, 예상되는 저항을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군대를 준비하고 훈련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시된 것이 이른바 '충정훈련'이었다. 충전훈련은 쉽게 '폭동진압훈련'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민중의 혈세로 유지되는 군대를 동원해 자기 부모형제의 가슴에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도록 하는 야만적 훈련이었다. (p. 21)
제 2번: 대열을 정비하는 민주 진영
1. YMCA 위장결혼식 사건은 비록 참석자들 모두가 군부쿠테타의 음모를 정확히 간파한 것은 아니었지만, 독재자 박정희가 사망한 후에도 유신체제를 떠받치던 세력이 엄연히 버티고 있으며, 그들이 유신체제의 부활 음모를 꾀하고 있음을 세상에 알린 사실상 최초의 투쟁이었다. (p. 24)
2. 학원민주화투쟁에는 광범위한 학생들의 참여가 있었으며, 일부 어용교수 퇴진과 학칙 개정 등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투쟁을 통해 광범위한 학생들이 투쟁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p. 26)
3. 이렇듯 대학가는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군부와 대결할 수 있는 대결을 갖출 수 있었다. 대학가의 경우 오랜 기간에 걸친 반독재투쟁을 통해 다양한 경험과 자신감을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동현장은 사정이 달랐다. 노동자들은 그동안 완전한 무권리상태에서 짓눌리고 뺴앗기면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왔다. 노동자들의 처절한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권력의 잔혹한 탄압에 직면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권력에 잔뜩 주눅이 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p. 27)
4. 노동부가 집계한 자료를 보더라도 1980년 5.17쿠테타 이전에 발생한 노동쟁의는 무려 2,168건에 이르렀다. 양적 규모도 컸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은 필요하다고 느끼면 파업/농성 등 적극적인 투쟁을 벌임으로써 요구사항의 대부분을 달성할 수 있었다. 특히 4월 8일부터 10여 일간에 걸쳐 언론과 민중의 비상한 관심을 받으며 진행된 청계피복노동조합의 농성투쟁은 마침 내 29퍼센트의 임금인상을 쟁취함으로써 노동자들의 투쟁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p. 28)
제 3번: 대격돌
1. 유신시대에 야권을 이끌던 두 지도자인 김영삼/김대중 씨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동의 적이었던 박정희가 사라지자 이들은 서로 권력을 차지하려고 끝내 갈라서고 말았다. (p. 33)
2. 5월 15일, 투쟁은 한결 규모가 확대되고 그 범위 또한 확산되었다. 이날 서울에서만도 대학생 10여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지방에 있는 26개 대학이 동시에 투쟁의 포문을 열었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14일에 벌인 시위와는 달리 서울역 광장에 집결해 연좌농성을 벌이면서 전두환 일파와 최규하 정부를 규탄했다. 그 주위를 에워싼 시민은 줄잡아 30만 명이었다. (p. 37)
3. 시위 학생들에 대한 인근 시민의 반응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행진하는 학생들의 머리 위로 빵과 휴지와 수건이 날아들었고 지갑을 털어 학생들에게 밥을 사 먹이는 시민도 무수히 많았다. 병원에서는 시위 중에 터진 머리를 무료로 꿰매주고 민가에서는 쫓기는 학생들을 숨겨주었다. (p. 38)
4. 군부는 학생시위의 열기가 높았을 때에는 몹시 긴장해 있었다. 그들은 학생들의 투쟁열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고, 휴교령조차 내리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5.17쿠테타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서울역 회군'을 통해 군부가 학생들의 약점을 간파하면서부터다. 따라서 5.17쿠테타를 허용했던 것은 학생들의 대대적인 가두진출이 아니라 어이없는 퇴각이었다고 볼 수 있다. (p. 42)
5. 그러나 이 같은 시대적 한계를 온몸으로 뛰어넘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죽어가는 역사를 되살리고, 나아가 거대한 역사의 전진을 이룩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아니 뜨거운 피로써 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들은 이름 없는 이 땅의 민중이었다. 바로 여기서 '항쟁의 도시 광주'가 역사의 무대 위에 오르게 된다. (p. 43)
제 2장: 광주민중항쟁
제 1번: 피로 물드는 광주
1. '휴교 시에는 오전 10시 학교 정문 앞'이라는 행동지침을 따르는 학생들이 전담대 정문 앞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물론 특별히 지도부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10시가 조금 넘자 약 2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이 용감한 학생들은 수가 늘어나자 힘을 얻어 공수부대의 학교 점령을 비난하면서 구호를 외쳤다.
"비상계엄 해제하라!"
"공수부대 물러가라!"
번뜩이는 총칼 앞에서의 이 당돌한 외침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남한 전역을 통틀어 군사쿠테타에 항거했던 유일한, 그러나 힘 있는 포효였다. 이는 분명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는 한줄기 빛이었다. (p. 45)
2. 그러나 전두환 일파는 18일 광주 학생시위를 각별한 눈으로 지켜 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광주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총칼에 대한 두려움으로 잔뜩 겁을 집어먹고 움츠러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져나온 광주의 시위는, 총칼의 위협 앞에서도 쉽게 굴복하지 않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전두환 일파에게는 위협적인 요소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약 광주에서 일어난 시위를 조기에 진압하지 못한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자신감을 회복해 군부쿠테타에 대한 저항에 나설 것이 틀림없었다. (p. 46)
3. 광주가 어떤 도시인가. 광주는 박정희 독재시대에 극단적인 지역차별정책을 받아온 호남의 중심지였다. 호남은 개발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려났고 호남인은 실력에 관계없이 출신지역이 문제돼 사회활동에서도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했다. 광주 사람들은 이 같은 차별정책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왔고, 그 결과 군부독재에 대한 원한이 뼛속 깊숙이 박혀 있었다. (p. 49)
4. 전옥주, 차명숙 씨 등 애국적인 여성들이 앰프를 차에 싣고 광주 시내를 돌면서 시민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이렇게 하여 시민들의 사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그 힘 또한 놀라울 정도로 강화되어갔다. (p. 53)
5. 오후 6시경, 무등경기장을 떠난 차량 200여 대가 요란한 경적과 함께 일사분란한 대오로 도청을 향해 진격했다. 그 뒤로 시민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행진했다. 한마디로 민중의 위대한 힘이 연출되는 장엄한 순간이었다. (p. 53)
제 2번: 마침내 무장항쟁으로
1. 5월 21일 현재 인구 73만의 광주에 투입된 병력은 3개 공수여단과 20사단을 합쳐 자그마치 2만에 육박하는 대부대였다. (p. 55)
2. 차량을 조달하기 위해 시위대의 일부가 아세아자동차 공장으로 몰려가자 그곳 노동자들이 장갑차와 차량 56대를 선뜻 내주었고 일부는 시위에도 합류했다. 이렇게 하여 전날보다 강력해진 차량시위대가 형성되자 이들을 앞세운 10만이상의 시민들이 금남로로, 도청으로 진격했다. 도청 앞 공수부대와 30여 미터 간격을 두고 시민들의 항의집회가 시작되었다. 이때가 오전 10시경. (p. 56)
3. 오후 1시 정각이었다. 느닷없이 <애국가>가 연주되면서 일제히 사격이 시작되었다. 공수부대원들이 '엎드려 쏴' 자세로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를 시작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근처의 전일빌딩, 상무관, 도청, 수협 전남도지부 건물의 옥상에서 저격병들이 시위대열 선두에 있는 주동자들을 겨냥해 사격을 실시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격은 메가폰으로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약 10분간 계속되었다.
금남로는 피바다를 이루었다. 시민들로 가득 찼던 거리는 순식간에 적막으로 뒤덮였고, 죽은 이들의 피와 부상자들의 신음만이 금남로의 공백을 메우고 있었다. 아우성치는 부상자들을 구하기 위해 용감한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왔지만 그들도 저격병의 표적이 되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태 앞에 넋을 잃고 분노와 공포감에 몸을 떨던 1시 30분경, 한 대의 장갑차가 텅 빈 금남로를 가로지르며 도청을 향해 질주했다. 상의를 벗고 이마에 흰 띠를 두른 청년 한 사람이 장갑차 위로 상체를 드러낸 채 태극기를 흔들며 절규하고 있었다. 그는 외쳤다.
"광주 만세!"
그 순간 청년의 몸은 공수부대의 총탄에 붉은 피로 물들었고, 주인 잃은 장갑차는 화순 방면 도로를 따라 사라졌다. (p. 57)
4. 옥상의 저격수들은 주변 건물의 창으로 이 광경을 내다보는 사람들에게도 총격을 퍼부었다. (p. 58)
5.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수많은 시민이 헌혈하기 위해 각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러고는 끝이 보이지 않는 헌혈 대열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그중에는 술집 골목이 즐비한 황금동에서 찾아온 아가씨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p. 60)
6. 한참 후 전열을 재정비한 시민군은 도청으로 진격해 비로소 공수부대가 철수했음을 확인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감격에 겨워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 희생자의 고통에 찬 울부짖음 위로 해방을 맞이하는 시민의 환호 소리가 온 광주 시내를 뒤덮었다. (p. 62)
7. 목포 시민들은 23일 5만 명이 참석해 '민주헌정 수립을 위한 목포 시민 궐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광주민중항쟁의 마지막 순간까지 투쟁을 함께했다. (p. 63)
제 3번: 해방 광주
1. 누구든지 시민군을 아군이라 부르는 데 서슴지 않았다. 아낙네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시위차량을 불러 세우고 주먹밥과 김밥을 부지런히 올려 주었다. 그들은 시민군 청년들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얼굴로 "어떻게 싸웠느냐, 다치지는 않았느냐"묻곤 했는데, 시민군들은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무용담을 말했다. 어떤 아넥네는 물통을 들고 나와 그들의 얼룩진 얼굴을 닦아주고 등을 다독거리며 격려하기도 했다. 모두들 자식이나 동생 같은 사람들이었다. 약국 앞을 지날 때에는 약사들이 피로회복제와 드링크제를 한두 박스씩 차량에 올려주었고, 시민군이 이제 많이 먹어서 필요 없다고 거절해도 다른 동료들에게 나눠주라고 기어코 올려놓기도 했다. 골목 어귀의 슈퍼마켓이나 가게에서는 담배도 몇 보루씩 차 위에다 올려주었다. 그러나 아무 곳에서도 술을 주고 받지 않았는데, 시민군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술을 마시거나 취한 경우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p. 64)
2. 광주 시민은 매점매석을 방지함으로써 제한된 생필품을 최대한 활용했다. 쌀집에서는 한꺼번에 두 되 이상의 쌀을 팔지 않았고, 담배 가게 주인은 한 사람에게 한 갑씩만 담배를 팔았다. 슈퍼마켓이나 식료품점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것을 그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알아서 자발적으로 지켰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기간에 평소 흔히 있던 강도나 절도 등도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와 함께 시민군과 학생이 주축이 되어 시내 치안과 경비를 맡았다. 교통 역시 시민군이 확보한 차량을 동원해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해결했다.
이로써 광주 시민은 인간이 투쟁을 통해 얼마나 고결해질 수 있는지를, 우리 민중이 얼마만큼 성숙된 자치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p. 65)
3. 시민들의 투쟁의식을 유지/발전시키고, 상황을 올바로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을 집중했다. 그 결과 그동안 분산적으로 이루어지던 각각의 홍보활동을 하나로 통합해 소식지 『투사회보』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p. 69)
4. 전옥주, 차명숙 씨가 중심이 된 가두방송조 역시 맹렬한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시민들의 투쟁의식을 고취했다. (p. 69)
5. 오후 3시경 드디어 광주 지역 청년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10만이 넘는 시민들의 열기를 모아 '제1차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를 열었다.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과 <애국가>를 필두로 대회가 시작되었다. 노동자, 농민, 시민, 학생, 주부 등 그야말로 각계각층의 대표들이 단상에 올라와 각종 성명서와 결의문을 낭독하고 신군부의 야욕과 만행을 규탄하면서 '끝까지 싸워서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라고 역설 했다. 이날 사회를 본 김태종(전남대 4학년) 씨가 "이 나라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고 싸워서 쟁취하는 것입니다"라고 열변을 토하자 시민들은 광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와 박수로 투쟁의 결의를 표시했다. 만세삼창으로 궐기대회가 끝났지만 시민들은 광장을 떠나지 않았다. 10여 명의 고등학생들이 친구의 시신이 든 관을 태극기로 덮고 <애국가>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운구행진을 시작하자 시민들은 오열을 터뜨렸다. (p. 70)
제 4번: 죽음을 딛고
1. 광주와 연결된 모든 교통망이 완전히 봉쇄되고 말았다. 그럼으로써 광주는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바다 위에 떠있는 한 점의 섬과도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광주를 봉쇄하고 있던 군부대는 광주를 왕래하는 사람을 보면 이유를 막론하고 처단했다. 그 결과 무수한 양민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p. 72)
2. 미 국방성 대변인 토머스 로스가 "존 위컴 주한 유엔군 및 한미연합군 사령관은 그의 작전지휘권 아래 있는 일부 한국군을 군중진압에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이에 동의했다"라고 밝힌 것이 5월 22일이었다. 그러니까 미국 역시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기다리지 않고 무력에 의한 진압방침을 일찌감치 결정해버린 것이다. 미국은 20사단의 광주 투입을 승인함과 아울러 오키나와에 있는 조기경보기 2대와 필리핀 수빅 만에 정박 중인 항공모함 코럴시 호를 한국 근해에 출동시켰다. 이는 전두환 일파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 표명임과 동시에 전체 한국 민중에 대한 무력시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조치는 당연히 워싱턴에 있는 최고 정책결정기관의 결정을 거친 것이다. 정확히 말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기관은 국방성, 국무성, 국가안보회의 저액위원회였다.(p. 74)
3. 마지막 결전을 함께할 사람을 선정했다. 150여 명의 지원자 중 80여 명이 군 제대자였고 10여 명이 여학생, 나머지 60여 명은 고등학생이거나 군대 경험이 없는 청년들이었다. (p. 77)
4. 밤 10시에 항쟁 지도부의 한 사람이 항쟁과정에 동참했던 아내를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최후의 작별을 했다. 그의 아내는 시민군들이 보는 데서 껴안을 수도 안길 수도 없고, 차마 목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내뱉을 수도 없어 그의 팔에 머리를 기대고 낮게 흐느꼈다.
또다시 하루가 가고 항쟁 10일째이자 마지막 날인 27일이 되었다. 새벽 2시를 전후해 어둠이 짙게 깔린 광주 시내에는 여학생(박영순, 당시 숭의여전 2학년) 한 명이 처절하게 마지막 가두방송을 하고 있었다.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우리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숨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일어나서 끝까지 싸웁시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때 거의 모든 광주 시민은 깨어 있었다. 그 순간 애절한 그 여학생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광주 시민의 가슴속에 박혀왔다. 이 순간의 강렬한 느낌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덧 어둠과 정적뿐인 거리 저편으로 가두방송이 이어질 듯 끊어질 듯하면서 차츰 멀어져갔다. (p. 77)
5. 급박한 순간에 도청 상황실에서는 자폭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한 청년이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말했다. "고등학생들은 먼저 총을 버리고 투항해라. 우리야 사살되거나 다행히 살아남는다 해도 잡혀 죽겠지만, 여기 있는 고등학생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산 사람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 항쟁의 마지막을 자폭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자, 고등학생들은 먼저 나가라." 청년의 눈빛이 번득였다. 장내는 숙연해졌고 수류탄을 움켜쥐고 있던 고등학생들은 흐느껴 울었다. (p. 78)
6. 광주민중항쟁은
첫째, 미국과 군부독재가 권력유지를 위해서라면 대량학살을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둘째, 군부독재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결사항전의 정신을 불러일으켰다. 20여 년 전 5.16 쿠테타 당시 우리 민중은 총칼의 위협 앞에 맥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로부터 우리 민중은 군부독재의 폭력 아래 굴종의 나날을 보냈다. 바로 얼마 전 5.17군사쿠테타를 눈앞에 두고서도 대다수 민중은 군대 투입의 위협에 그만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려야만 했다.
이 지겨운 굴종의 시대는 광주민중항쟁을 통해 엄청난 피흘림을 대가(너무나 값비싼!)로 치르고나서야 끝내 자신을 마감할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우리 민중은 광주에서의 피의 항쟁을 목도하면서 비로소 고통스러운 참회에 젖어들었고, 그리하여 총칼의 위협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고 또한 필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셋째, 민중의 자치능력을 입증했다. 해방 광주, 그것은 기존의 낡은 질서가 무너진 속에서 미중 자신들의 손으로 창조되고 유지되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감격의 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지배 질서가 붕괴되면 오직 혼란만 존재한다는, 통치자들의 교설이 갖는 기만성이 낱낱이 폭로되었다. (p. 80)
7. 광주민중항쟁은 그 어둠을 몰아낼 수많은 저항의 불씨를 우리 민중의 가슴속에 뿌려놓았다. 그 불씨는 조금씩 지펴지기 시작했다. 광주 민중의 결사항전 정신을 가슴에 보듬은 채 학생들은 투쟁의 돌파구를 열어나갔고, 노동자와 농민들은 각자 자기 영역에서 투쟁의 터전을 일구었다. 그리하여 저항의 불씨는 서서히 타오르는 불꽃이 되었고 마침내 1987년 6월 민중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의 거대한 불기둥으로 치솟아오르면서 1980년대를 투쟁과 승리의 시대로 장식했다. (p.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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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오월, 장우
제목: 빼앗긴 오월
작가: 장우
출판사: 사계절
초판 1쇄: 2015년 5월 11일
독서 기간: 12월 9일
추천인: 손현민
소감:12월 11일에 광주 망월동 5.18 국립묘지를 방문하기 전에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가야 되겠다 싶어 관련 책들을 수소문했고, 손현민이 추천해 읽게 되었다. 한국사 교과서로 배운 한두 줄의 암기 거리가 아닌, 우리 시대의 비극으로, 그분들이 우리에게 남기신 거룩한 유산으로 5.18 민주화 운동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인상 깊은 구절:
작가의 말
어제는 국립5.18민주묘지에 다녀왔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와야지 했는데, 발걸음은 역시나 무거웠습니다.
그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최연소 안장자의 비문 앞에서는 같은 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꽃잎처럼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마.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 있지만.
좋은 세상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리…….
'지금 우리는, 아니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연분홍 꽃비가 아스팔트 위로 흩날렸습니다. 영글지 못한 망자들의 넋이 날리는 것만 같아 차를 한쪽으로 세워야 했지요.
대망 2, 야마오카 소하치 (0) | 2017.0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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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3, 박세길 (0) | 2017.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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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0) | 2017.01.05 |
5.18 민중항쟁, 김진경
제목: 5.18 민중항쟁
작가: 김진경
출판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판 1쇄: 2004년 3월 10일
초판 3쇄: 2006년 5월 22일
독서 기간: 12월 8일
추천인: 김효진 선생님
소감: 12월 11일에 광주 망월동 5.18 국립묘지를 방문하기 전에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가야 되겠다 싶어 관련 책들을 수소문했고, 김효진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되었다. 한국사 교과서로 배운 한두 줄의 암기 거리가 아닌, 우리 시대의 비극으로, 그분들이 우리에게 남기신 거룩한 유산으로 5.18 민주화 운동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인상 깊은 구절:
1장: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
1. 자신의 삶이 일회적이고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귀중한 것으로 인식하고 충만하게 채워가려 한다. 그리고 상상을 통해 다른 사람도 자기와 같다는 걸 인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하게 된다. (p. 10)
4장: 우리의 자기긍정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1. 밤 10시경 MBC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광주의 소식은 한 마디도 전하지 않으면서 삐끔삐끔 말도 안 되는 계엄군측의 발표만 흘리는 방송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드디어 폭발한 것이었다. (p. 51)
2. 광주시내 모든 병원은 총상 부상자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전남대병원, 기독교병원, 적십자병원, 각종 외과/내과 병원, 심지어는 산부인과 병원에까지 총상 사망자와 부상자들로 넘쳐났다. 아비규환의 와중에서 총상 사망자와 부상자들로 넘쳐났다. 아비규환의 와중에서 총상 환자들을 살린 것은 고급약품이나 최신기술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내기 위해 전력을 다한 의사와 간호사들, 병원으로 달려와 자신들의 단 한 방울의 피라도 보태겠다며 수백 미터씩 줄을 선 헌혈 행렬이었다. (p. 62)
3. 중학생부터 장년층까지 수백 명이 공수부대를 몰아내기 위해 총을 들었다. 이 무장 시위대를 광주 시민들은 시민군이라 불렀다. (p. 63)
4. 2차대전 때나 쓰이던 M1, 칼빈이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총이 아니었다. 그것은 광주 시민들의 꺾일 수 없는 기개이자 자존심이었다. (p. 63)
5. 도청은 텅 비어 있었다. 드디어 시민군이 공수부대를 광주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승리를 쟁취한 것이었다.
물론 공수부대의 퇴각 조치는 신군부의 작전에 따른 것이었다. 그것은 일반 국민들에게 광주상황을 왜곡 전파하여 광주를 고립시킨 다음 군대의 힘을 일거에 집중시켜 광주항쟁을 분쇄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군부의 의도가 어떠했든 광주 시민들에게 그것은 피로 쟁취한 승리임에 틀림없었다. (p. 65)
6. 목숨에 대한 위협을 무릅쓰고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냈다는 자긍심은 서로의 가슴에 반향을 일으키면서 무한한 신뢰에 바탕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p. 66)
7. 5월 22일 아침 일찍부터 시민들은 금남로로 모여들었다. 시민들은 폐허가 되다시피 한 거리를 자발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말라붙은 핏자국을 물로 씻어내고, 불탄 차와 바리케이드로 썼던 전화박스, 대형화분들을 치웠다. 거리는 제법 산뜻한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계엄군의 봉쇄작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광주는 외부와 통하는 통신과 교통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였다. 광주 시민들은 이러한 어려움에 현명하게 대처했다.
우선 매점매석을 방지하여 시내에 있는 생활필수품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쌀집에서는 한 번에 두 되 이상의 쌀을 팔지 않았고 담배 가게 주인은 한 사람에게 한 갑씩 만 팔았다. 모든 가게가 마찬가지였다. 또 주부들은 동별로 김밥을 만들어 시민군들에게 제공했고 가게들에서도 빵, 우유, 드링크제 등을 아낌없이 무상으로 내놓았다.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이야기되는 사랑과 상부상조의 민중공동체를 통해 악조건을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p. 66)
8. 자발적인 시민궐기대회를 열었다. 가정주부, 상인, 농민, 종교인, 학생들이 연단에 뛰어올라 울분을 토하고 자기 나름대로 투쟁방향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p, 69)
9. 광주의 항쟁은 21일부터 목포, 함평, 무안으로, 나주, 영산포, 영암, 강진, 해남, 화순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p. 72)
10. 미국은 이러한 신군부의 광주 고립화 작전과 진압작전을 지원하고 있었다.
5월 22일 미 국방성 대변인 토머스 로스는 "존 위컴 주한 유엔군 및 한미연합사령관은 그의 작전지휘권 아래 있는 일부 한국군을 군중 진압에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이에 동의하였다"고 밝혔다. 3개 공수여단의 학살을 묵인한 데 이어 20사단의 광주 무력진압 투입을 허용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은 5월 23일 12시 부로 33사단 1개 대대 병력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소요사태 확대에 대비, 광주 지역 질서유지를 위해" 이양해 달라는 신군부의 요청을 즉시 받아들였다.
또한 미국은 신군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광주 고립화를 지원하였다. 미국 행정부는 남침의 징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5.18민중항쟁이 더 격화될 경우 남침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계속했다. 그리고 실제로 조기 경보기와 항공모함을 급파함으로써 국민 일반이 5.18민중항쟁을 불안하게 생각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럼으로써 광주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고 무력진압을 정당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p. 73)
11. 이 오인전투 직후 11공수여단 대원들은 인근 마을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ㅅ다. 부근의 동물농장에 들어가 집중사격, 칠면조 250마리를 떼죽음시켰다. 소와 나머지 가축들은 물론이고 이 총격으로 마을 주민 8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을 입었다. (p. 77)
12. 5월 26일 새벽 5시 30분, 마침내 탱크를 앞세운 20사단 병력이 각 방면에서 광주시내를 향해 진군해 왔다. (p. 86)
13. 항쟁지도부는 궐기대회가 끝날 무렵 오늘 밤 계엄군이 공격해 올 것 같다고 발표했다. 일순 분위기가 싸늘해지면서 광장에는 비장한 침묵이 감돌았다. 궐기대회가 끝났는데도 시민들은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여학생이 광장의 모퉁이에서 청아한 목소리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군중 사이로 퍼져나갔다. 시민들은 누가 선두를 섰는지 모르게 시가행진을 시작했다.
같은 시간, 도청 안에서는 몇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 수습위원들이 청년 학생들에게 같이 살아 남아야 하지 않겠냐고 무기를 버리고 투항할 것을 종용했다. 누군가가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물론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냥 이대로 아무 저항 없이 계엄군을 맞아들이기에는 지난 며칠 동안의 항쟁이 너무나 장렬했습니다. 누군가가 여기에 남아 도청을 사수하다 죽어야 합니다." (p. 88)
14. 광주 최후의 날인 5월 27일 새벽, 전남 도청작전에 투입된 병력은 3,7,11공수 등 3개 여단과 특공부대 병력 376명, 공격부대인 보병 2개 사단 병력 5,036명, 봉쇄부대 병력 769명 등 총 6,172명이었다. 외곽전투에 참여한 병력까지 합한다면 무려 2만여 명이었다.
이 날 아침 7시까지 광주 상공을 가득 메우며 가로질러 비행하던 헬기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였으며 제트폭격기도 굉음을 내며 초계비행을 했다. 도청 옥상에 걸린 대형 스피커에서는 군가인 '승리의 찬가'가 울려 퍼졌다. 공수부대 병사들은 대오를 갖추어 힘차게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승리했단 말인가? 한 시인의 표현대로 무등산은 차마 볼 수 없어 제 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려 버렸다. (p.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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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0) | 2017.01.05 |
소년이 온다, 한강
제목: 소년이 온다
작가: 한강
출판사: 창비
종이책 초판 1쇄 발행 2014년 5월 19일
전자책 초판 발행 2014년 6월 5일
독서 기간: 12월 3일 ~ 12월 4일
추천인: 손현민, 김민성
소감: 12월 11일에 광주 망월동 5.18 국립묘지를 방문하기 전에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가야 되겠다 싶어 관련 책들을 수소문했고, 이 책을 제일 먼저 추천받아 읽기 시작했다. 광주 시민들이 겪은 애환이 너무 슬퍼 책 읽는 내내 거의 쉬지 않고 울어야만 했다. 한국사 교과서로 배운 한두 줄의 암기 거리가 아닌, 우리 시대의 비극으로, 그분들이 우리
에게 남기신 거룩한 유산으로 5.18 민주화 운동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인상깊은 구절:
1장: 어린 새
1. 죽은 사람들의 머리맡에서 일렁이는 촛불 하나하나가 고요한 눈동자들처럼 너를 지켜보고 있다.
2.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끗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3. 그 밤 빽빽이 강당을 메운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문득 둘러보며, 마치 이곳에 집결하기로 약속한 군중 같다고 너는 생각했다. 소리치지도 움직이지도 손을 맞잡지도 않는, 지독한 시취만을 뿜어내는 군중 속을, 너는 장부를 겨드랑이에 끼운 채 빠르게 걸어다녔다.
2장: 검은 숨
1. 꿈속으로 숨을 수 있다면.
아니, 기억 속으로라도.
종례가 유난히 길던 너의 반 복도에서 서성이며 너를 기다리던 작년 여름으로. 네 담임이 앞문으로 나오는 걸 보고 얼른 가방을 고쳐들던 순간으로. 다른 애들은 다 나오는데 네가 안 보여 교실로 들어갔다가, 칠판을 지우고 있는 너를 큰 소리로 부르던 순간으로.
4장: 쇠와 피
1. 내가 함께 올라탄 트럭이 시내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습니다. 우리는 두차례 길을 잘못 들었고, 겨우 도착한 예비군 훈련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총을 가져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가전에서 희생되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혀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꼐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2. 재판장님이 입장하십니다.
서기의 말이 떨어지자 앞문이 열리며 법무장교 셋이 차례로 들어왔습니다.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습니다. 앞에서 두번째 줄 정도였습니다. 반쯤 고개를 들고 나는 앞쪽을 살폈습니다. 누군가가 소리 죽여 흐느끼듯 애국가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어린 영재라는 걸 깨달았을 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미 합창이 시작돼 있었습니다. 자력에 이끌린 것처럼 나도 따라 불렀습니다.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우리들이, 땀과 피와 고름이었던 우리들이 조용히 노래하는 동안, 어째서였는지 그들은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소리치지도,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내려치지도, 위협했던 대로 벽으로 몰아 넣어 총살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노래를 끝마칠 때까지, 소절과 소절 사이마다 위태한 침묵이 풀벌레 소리와 함꼐, 간이재판소의 서늘한 공기 속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6장: 꽃 핀 쪽으로
1. 이름만 걸어놓고 얼굴도 한번 안 비쳤던 유족회에 처음 나간 것은, 부회장이란 엄마가 돌린 전화를 받고나서였다이. 그 군인 대통령이 온다고, 그 살인자가 여기로 온다고 해서……. 네 피가 아직 안 말랐는디.
안 그래도 잠을 깊이 못 들고 뒤척이는 날들뿐이었지마는, 그날부터 새로 잠을 못 잤다이. 네 아부지도 잠을 못 자드라마는, 평생 병치레만 하는 순한 양반이라 억지로 떼어놓고 혼자 유족회에 갔다이. 처음 보는 엄마들허고 인사를 허고, 쌀집을 하는 회장네에서 밤늦도록 현수막하고 피켓을 만들고, 모자란 것은 각자 집에 가서 더 만들어오기로 하고 헤어졌다이. 헤어질 적에 손을 잡는디, 그 차갑든 살…… 암것도 속에 없는 허재비 같은 손을 맞잡고, 허재비 같은 등을 서로 문지름스로 얼굴을 들여다봤다이. 얼굴 속에도 암것도 없고, 눈 속에도 암것도 없는 우리들이 내일 보자는 인사를 했다이.
무섭지 않았어야.
죽어도 좋다는 마음인디, 무서울 것이 어디 있겄냐. 다 같이 소복을 입고 그 살인자가 탄 승용차가 오기를 기다렸다이. 정말로 아침 일찍 그놈이 나타났다이. 소리를 맞춰서 구호를 외칠라던 계획은 엉망이 됐다이. 다들 울부짖고 졸도하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소복은 찢어졌다이. 현수막은 펼쳤다가 바로 뺏겼다이. 경찰서에 다 같이 끌려가 넋을 잃고 앉아 있는디, 우리하고 다른 곳에서 시위하기로 했던 부상자회 청년들이 잡혀들어왔다이. 시무룩이 줄을 서서 들어오다가 우리하고 눈이 마주쳤는디, 한 청년이 갑자기 울면서 소리쳤다이.
엄마들, 여기서 왜 이러고 있소? 엄마들이 무슨 죄를 지었소?
그 순간 내 머릿속이 멍해졌어야. 하얗게,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어야. 찢어진 소복 치마를 걷고 탁자 위로 올라갔다이. 더듬더듬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어야.
맞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가.
날개가 달린 것같이 형사들 책상 위를 겅중겅중 건너갔다이. 벽에 걸린 살인자 사진을 끌어내렸다이. 밟아 부순게 발에 유리가 박혔다이. 눈물이 흐르는지도 피가 튀는지도 몰랐다이.
발에서 피가 솟은게 형사들이 나를 병원으로 싣고 가더라야. 느이 아부지가 연락받고 응급실로 왔어야. 의사하고 간호사가 내 발바닥을 갈라서 유리 조각을 뽑고 붕대를 감는디 내가 느이 아부지한테 부탁했다이. 집에 좀 댕겨오소. 어젯밤에 만들어놓고 안 가져온 현수막 하나가 농 속에 있소.
그날 해 질 녘에 느이 아부지 어깨를 짚고 절름절름 옥상에 올라갔다이. 난간에 기대서서 현수막을 길게 내리고 소리 질렀다이. 내 아들을 살려내라아.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아. 정수리까지 피가 뜨거워지게 소리 질렀다이. 경찰들이 비상계단으로 올라올 때까지, 나를 들쳐메고서 입원실 침대에 던져놓을 때까지 그렇게 소리 질렀다이.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떄,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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