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꽃의 소묘(素描), 백자사, 1959>

'애송 & 영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 서: 일장, 유치환  (0) 2015.12.06
그 날이 오면, 심훈  (0) 2015.12.06
춘향유문(春香遺文), 서정주  (0) 2015.12.06
꽃, 김춘수  (0) 2014.04.07
사모, 조지훈  (0) 2014.04.05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0) 2014.04.05

민들레

화월선 유한나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꽃이 되길 바라느냐.


곧 멀리 날아갈 민들레 같은 너에게

난 꽃이기보단 바람이고 싶어라.



한국에 들어온 지 3년 차. 아토피가 어느 정도 호전되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지 말지 고민을 하던 차.

문답으로 같이 지은 내 인생 최고의 시.

가장 소중하다.

'화월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월 2일 2014년  (0) 2015.12.06
호박죽은 사랑을 싣고, 화월선  (0) 2015.12.06
마지막 서시(序詩), 화월선  (0) 2015.12.06
추월지기(秋月知己), 화월선  (0) 2015.11.22
민들레, 화월선 유한나  (0) 2014.04.07
신, 화월선  (0) 2014.04.05

화월선


너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우며

언제나 보이는 그대로 화사하다. 


너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조차 향기롭고

네가 바라보는 시선 또한 따스하다. 


모두가 이성에 눈이 멀어 침묵할 때. 

너 홀로 눈물 흘려 일깨우고


모두가 감성에 미쳐 울부짖을 때

너 홀로 두 팔 벌려 감싸 안으니


너는 나의 신이고. 만인의 여신이다.


오 신이시여, 바라옵건데 들어주소서.

오늘 당장 헤어지고 

내일 바로 잊혀질

우리 사이가 아닐 것임을.

내가 기억하고 네가 잊지 아닐 것임을.


오 신이시여, 바라옵건대 들어주소서.



2월 07년부터 지금까지(12월 15년) 써오고 있는 시.

한 사람을 바라보며 썼으나 지금은 잊혀지고

시상이 메말라 도무지 진척이 없다.

'화월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월 2일 2014년  (0) 2015.12.06
호박죽은 사랑을 싣고, 화월선  (0) 2015.12.06
마지막 서시(序詩), 화월선  (0) 2015.12.06
추월지기(秋月知己), 화월선  (0) 2015.11.22
민들레, 화월선 유한나  (0) 2014.04.07
신, 화월선  (0) 2014.04.05

사모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전 

두고두고 아름다움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 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물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또 한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 한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애송 & 영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 서: 일장, 유치환  (0) 2015.12.06
그 날이 오면, 심훈  (0) 2015.12.06
춘향유문(春香遺文), 서정주  (0) 2015.12.06
꽃, 김춘수  (0) 2014.04.07
사모, 조지훈  (0) 2014.04.05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0) 2014.04.05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서성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게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0>


'애송 & 영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 서: 일장, 유치환  (0) 2015.12.06
그 날이 오면, 심훈  (0) 2015.12.06
춘향유문(春香遺文), 서정주  (0) 2015.12.06
꽃, 김춘수  (0) 2014.04.07
사모, 조지훈  (0) 2014.04.05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0) 2014.04.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