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경험


제목: 보통의 경험

작가: 한국성폭력상담소

출판사: 이매진

초판 1쇄: 2011년 4월 13일

독서 기간: 2월 24일 ~ 2월 26일 2018년


소감: 

인상 깊은 구절:

내가 겪은 일의 가장 확실한 목격자는 바로 나라는 점을 스스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통 역시 피해 경험자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내 마음속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고 기쁨과 해방감을 되찾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이죠.


내 몸도 주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내 판단과 선택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을 만들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경험자가 제일 정확히 알고 있고, 해결의 방향을 가장 깊이 고민하며, 그 안에 진실을 품은 힘이 있구나.


삽입만 안 당하면 별거 아니고, 당하면 인생 끝이라는 '저렴한' 통념을 가진 사람이 많지만, 실제 피해자는 자신을 위해 순간순간 수많은 판단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인권의 명제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싸워 얻은 것입니다.


'술을 먹었는데도? 기억이 안 나는데도? 상대도 좋아했던 것 같은데......' 등 계속 질문을 하면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고 싶어 합니다. 그럴 때 상담소에서는 제삼자의 말로 면제를 받으려고 하기 전에 상대방이 어떻게 느꼈는지 먼저 들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성폭력을 쉽게 경험하게 되는 이유는, 성폭력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적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강간, 추행, 성폭행 등으로 불리던 것을 묶어 '성폭력'이라고 부르게 된 까닭은 행위 자체보다 그것이 폭력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행위들 사이에서 더 심한 것, 가벼운 것, 더 주요하고 덜 중요한 것을 제삼자가 멋대로 판단하지 말자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법을 대할 때 두 가지 태도가 필요합니다. 현재의 법을 잘 알고 활용하는 태도와 현행법에서 부족한 점을 인식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태도입니다.


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식 변화를 이끌거나 적어도 사회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고요.


한국성폭력상담소 2009년 상담 통계를 보면 사례 중 85%가 아는 사람이 가해자인 경우였습니다.


이상하거나 특수한 사람이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가족, 직장, 연애, 부부 관계 등 평범한 공간 속의 권력 관계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사건 자체보다 나중에 날아오는 이런 비난이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와 충격이 되기도 하는데, 이것을 2차피해라고 합니다.


술 때문에 범행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 범행을 위해 술의 힘을 '빌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성폭력은 성욕을 억제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억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리해서 다 호응하다가 나중에 펑크를 내는 사람보다 정확하게 거절한 사람을 더 신뢰하게 되는 법입니다.


흔히 상담자는 '피해자보다 지나치게 앞서가지도, 뒤에 있지도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피해자 중심'이라는 해결 원칙을 지키면서도 피해자에게 시의적절한 도움을 주자는 이야기입니다. 즉, 주변 사람은 피해자가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해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가 돼줘야 합니다.


설령 상대를 어느 정도 좋아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강제로 원치 않는 행위를 당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가해자를 의심하지 않은 마음과 거기에서 오는 배신감, 상처 등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가해자가 피해자의 믿음을 이용했다고 반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법적 해결이나 제도적 해결과 비교해 개인적인 해결 시도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피해자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고죄란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리거나 증거가 허위로 판명된 경우, 수사력을 낭비시킨 죄를 묻는 것입니다.


직장 내 성폭력을 없애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조직 사회와 노동 환경에 만연한 성차별적 문화,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말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라는 말을 기억합시다.


자신의 감정을 왜곡하거나 억누르지 마세요. 피해자가 느끼는 불쾌함과 불편함은 결코 잘못되거나 틀린 감정이 아닙니다.


피해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대응할 권리가 있습니다. 내가 느끼는 불쾌함을 제대로 살피고 잘 돌보는 것부터 성폭력에 맞서는 일이 시작됩니다.


회사에서 생긴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는 것 역시 커리어에 보탬이 될 수 있습니다. 직장 내 성폭력은 대부분 회사 전체의 문화와 위계의 문제이니, 사실 피해자가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회사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할 필요도 있지만, 개인의 고유한 공간과 시간, 감정을 돌보며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유지할 필요도 있습니다.


나에게 위해를 가한 남자친구나 애인을 '가해자'라고 명명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꼭 필요한 일입니다. 가해자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비로소 가해자가 나에게 저지른 폭력의 성질이 확실히 보이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니까요.


진지한 태도로 내가 어떤 피해를 보았으며, 앞으로 가해자와 단절하거나 지금까지와 다른 관계를 맺고 싶다는 것을 설명하면 주변 사람들도 내 생각과 감정에 공감할 것입니다.


내 애인이 나쁜 놈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 그 의심을 묻어두지 말아야 합니다. 위험 신호를 발견하면 빨간 불을 켜야지요. 폭력을 눈감아주면 더 큰 폭력을 부르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한다면, 위기 상황에서 나를 지켜주고 내 상처와 아픔을 위로해줄 것입니다.


가해자가 두렵다고 자꾸 가해자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달래는 형태로 협상하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가해자와 맺고 있는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가끔 가해자와 협상만 잘 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가해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거나 나의 사랑으로 가해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구원 심리에 빠지기도 하지만, 많은 상담 사례를 볼 때 그것은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가해자와 관계를 지속하는 동안 우리 자신은 계속해서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자기 소유물이기 때문에 통제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일은 오롯이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이면서, 많이 하면 할수록, 잘하면 잘할수록 좋은 일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밖에서 사랑을 구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 것이겠지요.


외로움은 인간적인 감정이지만, 외로움을 잘 견디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나쁜 상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거나 폭력적인 상대에게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리 연애가 잘 풀리는 상태라도, 모든 시간과 공간을 애인과 함께 보내지 말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나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분산 투자'라는 개념을 기억하면 도움이 되겠죠.


성 문제는 단순히 욕구나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정체감과 깊이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아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형태의 다양한 가족이 있습니다. '정상 가족'이라 불리는 가족 안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많고, '정상 가족'으로 분류되지 않는 가족 안에서 행복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편협한 가족의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나만의 새로운 가족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험한 일을 겪은 대상으로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 대신, 피해자가 외롭지 않게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탄탄한 사회적 지원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확한 인식을 가진 보호자라면, 피해자를 가해자와 분리하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안심시키며 치유를 도우려고 애쓸 것입니다.


만약 피해자가 성폭력 사건을 부끄러워하면서 숨기려고 한다면, 네 잘못이 아니며 놀라고 아팠던 마음은 나눌수록 작아지는 거라고 말해줘야겠지요.


상처받은 어린 내가 울고 있는 걸 알아차린다면, 이제는 모른 척하지 말고 안아주세요. 잊어버리라고, 털어버리라고 하기 전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먼저 물어봐 주세요.


내가 고민하는 크고 작은 문제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함께 경험하고, 고민하고, 바꾸려 하는 수많은 여성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입니다. 내가 걷는 속도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힘들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닙니다.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미해결 과제이죠.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을 해친 가해자와 싸우기보다 소중한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믿고 있던 사람에게 기대에 어긋난 말을 들으면 더욱 마음이 아프지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내 마음이 어떻게 찢어져 나뉘었는지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부분이 날 힘들게 하는지 스스로 알아차려야 하지요.


'경험'은 그대로 '기억'이 되지 않습니다. 경험이 기억이 될 때는 마음속에서 많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매우 불쾌하고 화가 나지만, 가해자가 나를 어떻게 대우했든 나는 변함없이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대가 없이 무작정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용서가 아닙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진실한 사과와 노력을 해야 하며,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고 치르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나와 친밀한 사람이라도 나에게 나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여전히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지 몰라도 그 '행동'은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힘들다면 그것은 별거 아닌 게 아닙니다.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나의 어떤 부분을 건드린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지금 하는 작업은 성폭력의 기억을 온전히 끄집어내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이것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성폭력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사건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죠.


'분노'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분노'에 관해 잘 이해하지 못해서입니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며 더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막는 역할을 합니다.


성폭력은 가해자가 나의 인격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나의 자존감을 해치려 한 부당한 행위이기 때문에 당연히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피해자의 '정당한 분노'는 자신과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고, 가해자에게 피해자와 공동체에 용서를 구할 것을 촉구합니다.


분노를 표현할 필요가 있을 때는 내 느낌과 생각을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전달합시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인 로라 데이비스는 "섣부르게 용서하라고 피해자에게 권고하는 것은 모욕"이라고 말합니다. 용서가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도 용서는 전적으로 피해자의 선택이며, 다른 사람이 강요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치유를 위해 애를 쓰듯, 가해자는 당연히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신을 보호하고 사랑하고 다치지 않게 하려는 모든 움직임은 중요합니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인정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려 노력하는 것이니까요.


가해자에게 보상을 받는 것은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가해자가 자기 잘못을 시인하게 하는 일입니다.


치유의 길에는 다 각자의 속도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신경 쓰지 말고, 상처받은 내가 잘 따라오고 있나 계속 주의를 기울이고 배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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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맞이단 후기

 

작년에 새내기 배움터(이하 새터)에 못 가 생긴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새내기 맞이단(이하 새맞단)에 지원했다. 당연히 붙을 줄 알고, “나 새터 간다!”고 여기저기에 떠벌리고 다녔는데 불합격 통지를 받고 한참 동안 당황했다. 아쉬운 맘을 이내 조금씩 정리하다가, 난데없는 추가합격 전화를 받고 결국 새터에 가게 되었다.

 

새터 첫날은 사흘 중 가장 정신없었지만, 제일 많이 생각나는 날이다. 그만큼 일이 고되고 많았으며 느낀 점 또한 많았던 까닭이다. 아침 7시에 대강당에서 우리 6팀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튿날 새벽 6시 야간근무가 끝날 때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적어본다.

 

야간 근무 시작 전 휴식 시간에 분위기 좀 내보려고 산책하다 설산에 올랐다. 조명은 은은했고 경사는 적당했으며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근처에 움직이는 거라곤 아득히 먼 거리의 정설차 한 대뿐이었으니 분위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일하러 와서 이래도 되는 걸까.’ 걱정돼 멀리 가진 못 하고 가장 가까운 언덕 위를 맴돌며 시간을 보냈다.

 

음악으로 「想望」를 들으며 지나온 날들과 친구들을 한참 생각했다.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는 감정을 맘속 깊이 다시 새기고 포근하며 서늘한 새벽 공기를 맘껏 마셨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맘속 부스럼이 다소 아문 시간이었다.

 

이튿날엔 쉴 시간이 훨씬 더 많았지만, 쌓인 피로 때문인지 온종일 맥없이 보냈다. 그리고 야간 근무 때 자융대 사람들이 즐겁게 노는 걸 보고 재학생들이 참 부러웠다. 나도 후배들 좀 보고 싶은데 첫날은 용기가 부족해서, 둘째 날은 근무시간이 겹친 탓에 그럴 수 없었다.

 

가뜩이나 아쉬운데 셋째 날, 쓰레기 제대로 안 버렸다고 후배들에게 싫은 소리 했던 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 좀 더 예쁜 말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즐기자고 온 새터의 마무리를 내 경솔함으로 덧칠한 것 같아 속상함이 가시질 않는다. 때 늦은 사과만큼 덧없는 게 또 있을까. 그래도 전하고 싶다. 나 때문에 맘 상한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새터를 위해 고생한 분들 얘길 안 할 수 없다. 새맞단, 총학생회, 그리고 각 단과대 학생회 등등 사흘 내내 이들이 보여준 헌신을 생각하면, 이번 새터가 성공적이었단 뭇 사람들의 반응이 자못 당연하게 여겨진다.

 

무전 치면 언제 어디서나 수 초 이내 바로 응답하던 우리 단장단만 해도, 이들에게 쉬는 시간이 과연 있긴 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사흘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쪽잠 잤을 그들 모습이 그려지는 순간이다. 우리 단원들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몸 사리지 않고 언제나 맡은 일 꿋꿋이 해낸 이들이 내 동료라는 사실이 참 든든하고 반가웠다. 새터가 끝난 지금도 흰 롱패딩을 보면 인사하고 싶어 손짓이 머뭇거리는 까닭이다.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함께한 새맞단원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우리 6팀에겐 한 번 더, 그리고 단장단엔 두 번 더 전하며 이 글을 줄인다.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건강 그리고 행복. 이미 이루신 것은 더욱더. 부족한 것은 올해엔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2 28 2018

수요일 오후 730

서울시립대학교 새내기 배움터(2 19~21)

새내기 맞이단 6팀 팀원,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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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슬픔

화월선

 

미워서 미워 화병이 나고

슬퍼서 슬퍼 눈물이 난다.

 

둘 중에 하나가 낫다면

그건 바로 슬픔이리라

 

미움은 쌓여 한이 되고

슬픔은 지쳐 날아가므로.



12 27 2017

월요일 오전 4시

이른 새벽에 일어나, 화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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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을 보고

화월선


우리 학교에 눈이 왔어요.

한애 한 분이 들뜨셨던데

설렘만큼은 그대로겠죠.


나이고도 싶어요.

흰 머리 송송 나 한애가 돼도

설레이고 싶어요.



11월 17일 2017년

금요일 오전 11시

첫눈을 보고, 화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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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대하여 3


언제부터 꽃을 좋아했던가. 그 기억이 제법 낯설다. 꽃에 대한 내 기억은 중학교 교실에 늘 붙어 있던 김춘수의 시 <꽃>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시가 좋았을 뿐, 그 당시 난 꽃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나에게 꽃이란 그저 풀때기 식물이었다.


그러다 늦봄에 벚꽃이 흩날리는 광경을 처음 보았다. 가지에서 바닥까지 너울너울 흩날리는 그 꽃잎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때부터였다. 꽃이 좋아지기 시작한 게.


하지만, 모든 꽃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꽃의 여러 모습 가운데, 오로지 떨어지는 찰나의 가장 화려한 꽃만을 사랑했다. 그리고 거의 10년 동안 내 인생의 기조도 떨어지는 꽃잎처럼 ‘오늘을 즐기자.’가 되었다. 


그러다 3년 전, 직접 꽃을 피웠던 경험이 꽃에 대한 내 마음과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꽃잎이 흩날리는 마지막 순간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기다림의 소중함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밤새 나 몰래 피진 않았을까, 피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텃밭에 나가면서 두근두근 설레이는 그 마음을 사랑했다.


씨앗에서 싹트고 망울이 열릴 때까지, 꽃은 66일 동안 단 하루도 멈추지 않고 계속 자랐다. 내 인생의 기조도 그에 맞춰, ‘어제보다 오늘 하루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자.’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지금도 계속 달라지고 있다. 더 낫다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인지 내 마음속 이견이 분분하다) 


꽃은 몇 달이 지나더라도 한 번 싹트고 물과 볕만 제때 주면 언젠가는 반드시 핀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봄이 오고 싶다. 꽃이 보고 싶다.


2월 23일 2018년

금요일 오전 0시 30분

얼마 전 입대한 

영제를 위해, 손유린.



2018/02/15 - [수필] - 꽃에 대하여 1

2018/02/18 - [수필] - 꽃에 대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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