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중항쟁, 김진경


제목: 5.18 민중항쟁

작가: 김진경

출판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판 1쇄: 2004년 3월 10일

초판 3쇄: 2006년 5월 22일

독서 기간: 12월 8일

추천인: 김효진 선생님

소감: 12월 11일에 광주 망월동 5.18 국립묘지를 방문하기 전에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가야 되겠다 싶어 관련 책들을 수소문했고, 김효진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되었다. 한국사 교과서로 배운 한두 줄의 암기 거리가 아닌, 우리 시대의 비극으로, 그분들이 우리에게 남기신 거룩한 유산으로 5.18 민주화 운동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인상 깊은 구절:

1장: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

1. 자신의 삶이 일회적이고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귀중한 것으로 인식하고 충만하게 채워가려 한다. 그리고 상상을 통해 다른 사람도 자기와 같다는 걸 인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하게 된다. (p. 10)


4장: 우리의 자기긍정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1. 밤 10시경 MBC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광주의 소식은 한 마디도 전하지 않으면서 삐끔삐끔 말도 안 되는 계엄군측의 발표만 흘리는 방송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드디어 폭발한 것이었다. (p. 51)


2. 광주시내 모든 병원은 총상 부상자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전남대병원, 기독교병원, 적십자병원, 각종 외과/내과 병원, 심지어는 산부인과 병원에까지 총상 사망자와 부상자들로 넘쳐났다. 아비규환의 와중에서 총상 사망자와 부상자들로 넘쳐났다. 아비규환의 와중에서 총상 환자들을 살린 것은 고급약품이나 최신기술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내기 위해 전력을 다한 의사와 간호사들, 병원으로 달려와 자신들의 단 한 방울의 피라도 보태겠다며 수백 미터씩 줄을 선 헌혈 행렬이었다. (p. 62)


3. 중학생부터 장년층까지 수백 명이 공수부대를 몰아내기 위해 총을 들었다. 이 무장 시위대를 광주 시민들은 시민군이라 불렀다. (p. 63)

4. 2차대전 때나 쓰이던 M1, 칼빈이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총이 아니었다. 그것은 광주 시민들의 꺾일 수 없는 기개이자 자존심이었다. (p. 63)


5. 도청은 텅 비어 있었다. 드디어 시민군이 공수부대를 광주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승리를 쟁취한 것이었다.

물론 공수부대의 퇴각 조치는 신군부의 작전에 따른 것이었다. 그것은 일반 국민들에게 광주상황을 왜곡 전파하여 광주를 고립시킨 다음 군대의 힘을 일거에 집중시켜 광주항쟁을 분쇄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군부의 의도가 어떠했든 광주 시민들에게 그것은 피로 쟁취한 승리임에 틀림없었다. (p. 65)


6. 목숨에 대한 위협을 무릅쓰고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냈다는 자긍심은 서로의 가슴에 반향을 일으키면서 무한한 신뢰에 바탕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p. 66)


7. 5월 22일 아침 일찍부터 시민들은 금남로로 모여들었다. 시민들은 폐허가 되다시피 한 거리를 자발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말라붙은 핏자국을 물로 씻어내고, 불탄 차와 바리케이드로 썼던 전화박스, 대형화분들을 치웠다. 거리는 제법 산뜻한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계엄군의 봉쇄작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광주는 외부와 통하는 통신과 교통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였다. 광주 시민들은 이러한 어려움에 현명하게 대처했다.

우선 매점매석을 방지하여 시내에 있는 생활필수품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쌀집에서는 한 번에 두 되 이상의 쌀을 팔지 않았고 담배 가게 주인은 한 사람에게 한 갑씩 만 팔았다. 모든 가게가 마찬가지였다. 또 주부들은 동별로 김밥을 만들어 시민군들에게 제공했고 가게들에서도 빵, 우유, 드링크제 등을 아낌없이 무상으로 내놓았다.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이야기되는 사랑과 상부상조의 민중공동체를 통해 악조건을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p. 66)


8. 자발적인 시민궐기대회를 열었다. 가정주부, 상인, 농민, 종교인, 학생들이 연단에 뛰어올라 울분을 토하고 자기 나름대로 투쟁방향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p, 69)


9. 광주의 항쟁은 21일부터 목포, 함평, 무안으로, 나주, 영산포, 영암, 강진, 해남, 화순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p. 72)

10. 미국은 이러한 신군부의 광주 고립화 작전과 진압작전을 지원하고 있었다.

5월 22일 미 국방성 대변인 토머스 로스는 "존 위컴 주한 유엔군 및 한미연합사령관은 그의 작전지휘권 아래 있는 일부 한국군을 군중 진압에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이에 동의하였다"고 밝혔다. 3개 공수여단의 학살을 묵인한 데 이어 20사단의 광주 무력진압 투입을 허용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은 5월 23일 12시 부로 33사단 1개 대대 병력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소요사태 확대에 대비, 광주 지역 질서유지를 위해" 이양해 달라는 신군부의 요청을 즉시 받아들였다.

또한 미국은 신군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광주 고립화를 지원하였다. 미국 행정부는 남침의 징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5.18민중항쟁이 더 격화될 경우 남침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계속했다. 그리고 실제로 조기 경보기와 항공모함을 급파함으로써 국민 일반이 5.18민중항쟁을 불안하게 생각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럼으로써 광주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고 무력진압을 정당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p. 73)


11. 이 오인전투 직후 11공수여단 대원들은 인근 마을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ㅅ다. 부근의 동물농장에 들어가 집중사격, 칠면조 250마리를 떼죽음시켰다. 소와 나머지 가축들은 물론이고 이 총격으로 마을 주민 8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을 입었다. (p. 77)


12. 5월 26일 새벽 5시 30분, 마침내 탱크를 앞세운 20사단 병력이 각 방면에서 광주시내를 향해 진군해 왔다. (p. 86)


13. 항쟁지도부는 궐기대회가 끝날 무렵 오늘 밤 계엄군이 공격해 올 것 같다고 발표했다. 일순 분위기가 싸늘해지면서 광장에는 비장한 침묵이 감돌았다. 궐기대회가 끝났는데도 시민들은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여학생이 광장의 모퉁이에서 청아한 목소리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군중 사이로 퍼져나갔다. 시민들은 누가 선두를 섰는지 모르게 시가행진을 시작했다. 

같은 시간, 도청 안에서는 몇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 수습위원들이 청년 학생들에게 같이 살아 남아야 하지 않겠냐고 무기를 버리고 투항할 것을 종용했다. 누군가가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물론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냥 이대로 아무 저항 없이 계엄군을 맞아들이기에는 지난 며칠 동안의 항쟁이 너무나 장렬했습니다. 누군가가 여기에 남아 도청을 사수하다 죽어야 합니다." (p. 88)


14. 광주 최후의 날인 5월 27일 새벽, 전남 도청작전에 투입된 병력은 3,7,11공수 등 3개 여단과 특공부대 병력 376명, 공격부대인 보병 2개 사단 병력 5,036명, 봉쇄부대 병력 769명 등 총 6,172명이었다. 외곽전투에 참여한 병력까지 합한다면 무려 2만여 명이었다.

이 날 아침 7시까지 광주 상공을 가득 메우며 가로질러 비행하던 헬기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였으며 제트폭격기도 굉음을 내며 초계비행을 했다. 도청 옥상에 걸린 대형 스피커에서는 군가인 '승리의 찬가'가 울려 퍼졌다. 공수부대 병사들은 대오를 갖추어 힘차게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승리했단 말인가? 한 시인의 표현대로 무등산은 차마 볼 수 없어 제 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려 버렸다. (p.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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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제목: 소년이 온다

작가: 한강

출판사: 창비

종이책 초판 1쇄 발행 2014년 5월 19일

전자책 초판 발행 2014년 6월 5일

독서 기간: 12월 3일 ~ 12월 4일

추천인: 손현민, 김민성

소감: 12월 11일에 광주 망월동 5.18 국립묘지를 방문하기 전에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가야 되겠다 싶어 관련 책들을 수소문했고, 이 책을 제일 먼저 추천받아 읽기 시작했다. 광주 시민들이 겪은 애환이 너무 슬퍼 책 읽는 내내 거의 쉬지 않고 울어야만 했다. 한국사 교과서로 배운 한두 줄의 암기 거리가 아닌, 우리 시대의 비극으로, 그분들이 우리

에게 남기신 거룩한 유산으로 5.18 민주화 운동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인상깊은 구절:

1장: 어린 새

1. 죽은 사람들의 머리맡에서 일렁이는 촛불 하나하나가 고요한 눈동자들처럼 너를 지켜보고 있다.


2.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끗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3. 그 밤 빽빽이 강당을 메운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문득 둘러보며, 마치 이곳에 집결하기로 약속한 군중 같다고 너는 생각했다. 소리치지도 움직이지도 손을 맞잡지도 않는, 지독한 시취만을 뿜어내는 군중 속을, 너는 장부를 겨드랑이에 끼운 채 빠르게 걸어다녔다.


2장: 검은 숨

1. 꿈속으로 숨을 수 있다면.

아니, 기억 속으로라도.

종례가 유난히 길던 너의 반 복도에서 서성이며 너를 기다리던 작년 여름으로. 네 담임이 앞문으로 나오는 걸 보고 얼른 가방을 고쳐들던 순간으로. 다른 애들은 다 나오는데 네가 안 보여 교실로 들어갔다가, 칠판을 지우고 있는 너를 큰 소리로 부르던 순간으로.


4장: 쇠와 피

1. 내가 함께 올라탄 트럭이 시내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습니다. 우리는 두차례 길을 잘못 들었고, 겨우 도착한 예비군 훈련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총을 가져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가전에서 희생되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혀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꼐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2. 재판장님이 입장하십니다.

서기의 말이 떨어지자 앞문이 열리며 법무장교 셋이 차례로 들어왔습니다.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습니다. 앞에서 두번째 줄 정도였습니다. 반쯤 고개를 들고 나는 앞쪽을 살폈습니다. 누군가가 소리 죽여 흐느끼듯 애국가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어린 영재라는 걸 깨달았을 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미 합창이 시작돼 있었습니다. 자력에 이끌린 것처럼 나도 따라 불렀습니다.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우리들이, 땀과 피와 고름이었던 우리들이 조용히 노래하는 동안, 어째서였는지 그들은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소리치지도,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내려치지도, 위협했던 대로 벽으로 몰아 넣어 총살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노래를 끝마칠 때까지, 소절과 소절 사이마다 위태한 침묵이 풀벌레 소리와 함꼐, 간이재판소의 서늘한 공기 속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6장: 꽃 핀 쪽으로

1. 이름만 걸어놓고 얼굴도 한번 안 비쳤던 유족회에 처음 나간 것은, 부회장이란 엄마가 돌린 전화를 받고나서였다이. 그 군인 대통령이 온다고, 그 살인자가 여기로 온다고 해서……. 네 피가 아직 안 말랐는디.

안 그래도 잠을 깊이 못 들고 뒤척이는 날들뿐이었지마는, 그날부터 새로 잠을 못 잤다이. 네 아부지도 잠을 못 자드라마는, 평생 병치레만 하는 순한 양반이라 억지로 떼어놓고 혼자 유족회에 갔다이. 처음 보는 엄마들허고 인사를 허고, 쌀집을 하는 회장네에서 밤늦도록 현수막하고 피켓을 만들고, 모자란 것은 각자 집에 가서 더 만들어오기로 하고 헤어졌다이. 헤어질 적에 손을 잡는디, 그 차갑든 살…… 암것도 속에 없는 허재비 같은 손을 맞잡고, 허재비 같은 등을 서로 문지름스로 얼굴을 들여다봤다이. 얼굴 속에도 암것도 없고, 눈 속에도 암것도 없는 우리들이 내일 보자는 인사를 했다이.

무섭지 않았어야.

죽어도 좋다는 마음인디, 무서울 것이 어디 있겄냐. 다 같이 소복을 입고 그 살인자가 탄 승용차가 오기를 기다렸다이. 정말로 아침 일찍 그놈이 나타났다이. 소리를 맞춰서 구호를 외칠라던 계획은 엉망이 됐다이. 다들 울부짖고 졸도하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소복은 찢어졌다이. 현수막은 펼쳤다가 바로 뺏겼다이. 경찰서에 다 같이 끌려가 넋을 잃고 앉아 있는디, 우리하고 다른 곳에서 시위하기로 했던 부상자회 청년들이 잡혀들어왔다이. 시무룩이 줄을 서서 들어오다가 우리하고 눈이 마주쳤는디, 한 청년이 갑자기 울면서 소리쳤다이.

엄마들, 여기서 왜 이러고 있소? 엄마들이 무슨 죄를 지었소?

그 순간 내 머릿속이 멍해졌어야. 하얗게,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어야. 찢어진 소복 치마를 걷고 탁자 위로 올라갔다이. 더듬더듬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어야.

맞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가.

날개가 달린 것같이 형사들 책상 위를 겅중겅중 건너갔다이. 벽에 걸린 살인자 사진을 끌어내렸다이. 밟아 부순게 발에 유리가 박혔다이. 눈물이 흐르는지도 피가 튀는지도 몰랐다이.

발에서 피가 솟은게 형사들이 나를 병원으로 싣고 가더라야. 느이 아부지가 연락받고 응급실로 왔어야. 의사하고 간호사가 내 발바닥을 갈라서 유리 조각을 뽑고 붕대를 감는디 내가 느이 아부지한테 부탁했다이. 집에 좀 댕겨오소. 어젯밤에 만들어놓고 안 가져온 현수막 하나가 농 속에 있소.

그날 해 질 녘에 느이 아부지 어깨를 짚고 절름절름 옥상에 올라갔다이. 난간에 기대서서 현수막을 길게 내리고 소리 질렀다이. 내 아들을 살려내라아.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아. 정수리까지 피가 뜨거워지게 소리 질렀다이. 경찰들이 비상계단으로 올라올 때까지, 나를 들쳐메고서 입원실 침대에 던져놓을 때까지 그렇게 소리 질렀다이.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떄,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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