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요. 

이젠 안녕이야. 

전국 일주 9 10. 

언제를 돌아봐도

기억나는 웃음뿐이야. 

고마워요. 고마워.


경상남도 양산시

김성수 윤여준 안지혁 김정환 김진우 이준헌 홍수민

부산광역시

이준헌 홍수민

경상남도 창원시

서창건

경상북도 김천시

박준호

충청북도 청주시

허석정 변민지 박준호 서창건

서울특별시

양준용


12월 2일 2015년

수요일 오후 6시

사릉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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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P


반갑습니다. 저는 22살 남자 대학생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사람처럼 저 역시나 어렸을 때부터 온천이 좋다 하여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고 심지어 금강산 관광 또한 치료 목적으로 다녀올 정도로 치료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아토피가 왜 아토피(Atopy)겠습니까.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비정상적인 반응', '기묘한', '이유를 알 수 없는'이란 그리스어로 해석되는데, 그 말마따나 지금 내가 하는 이 치료법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도 모른 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수없이 많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새 치료 방법을 찾아다녔습니다만, 아토피가 호전되지 아니한 것은 당연했고, 오히려 악화될 때도 숱하게 많았습니다.


제 나이 열 일곱, 중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학업과 아토피 치료를 병행하고자 청운의 꿈을 품고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습니다만, 저 스스로의 몫인 몸관리가 뜻대로 안 돼 흉측한 몰골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대학병원을 꾸준히 다니며 아토피 치료에 일신 전념하고 있습니다. 치졸하고 옹졸한 변명이오. 부끄러워 감추고 싶을 핑계이기도 합니다만, 제 잘못은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알지 못하고, 애매한 것을 애매하게 알고 있기에 옳고 그름의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지금 저에게는 귀사의 '아토피 혁명'이 절실합니다. 제 나이 이제 스물 둘. 귀사의 '아토피 혁명'에 도전합니다. 분명 이러한 도전은 처음이 아닙니다. 또한, 마지막이 아니 될 수도 있습니다. 그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또 하나의 도전'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걸 잘 압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우연이 인연이 되고 인연이 필연, 그리고 운명으로 귀결되듯이

이러한 실낱같은 '아토피 혁명'과의 우연을

아름다운 운명으로 끝맺음할 수 있도록 귀사께서 살펴봐 주시길 바랍니다.

분명 대한민국의 스물둘의 나이는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 나갈 나이니까요.


3월 17일 2014년

금요일 오후 4시

스물 둘, 대한민국의 청춘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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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편지.


전하고 싶은 마음은 산더미같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두서없이 갈겨써 보낸다.


내가 아버지 노트북을 살 때, 마치 네 아버지 일인 것처럼 나보다도 더 열심히 알아봐 줘서 고맙다. 끝내 내가 네 의견을 따르진 않았는데, 내가 아직 모자라 그런 것이니 너그러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네 그런 모습이 참 좋았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하여 잠깐의 미운 소리를 할 줄 아는 네가 내 제일 소중한 친구라는 점이 자랑스럽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지금 수능 준비하는 것도 전부 네 덕 아니냐. 정말 너는 내 삶의 은인이라 칭해도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


내가 누군가를 이긴다는 것은, 누군가가 나로 인하여 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다시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나는 세상을 다 가질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믿고, 믿는 대로 행하기 위해서, 나는 세상을 다 가질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내 사람이라면 의미 없다. 내가 이기나 내 사람이 이기나 결과는 zero-sum으로 마찬가지니 말이다. 덧붙여, 만일 그 대상이 너라면, 내 가장 소중한 친구인 너라면, 나는 너를 위하여 몇 번이라도 즐겁게 지고 또 질 것이다. 나에게 너는 넉넉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지독하리만큼 사람을 믿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사업하시다 하도 많이 사기당하셔서 그런 탓도 있지만, 애초에 나는 의심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안 그래도 째진 나의 작은 눈으로, 더 부릅뜨고 세상 사람들 모두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진 않는다. 라이어게임의 아키야마가 말한 것처럼 나 또한 조건 없는 신뢰는 무책임한 것으로 생각하고, 굳센 신뢰 이전에는 반드시 철저한 의심이 선행된다고 믿는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너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의심밖에 하질 못했다. 천성이 그런지 가정사 때문에 그런지 지독한 애정결핍으로, 나는 신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관심만을 갈구하며 미쳐 날뛰는 망아지였다. 그런 나에게 너는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하기에 부족할 만큼 소중하다.


여기서 어쭙잖게 진부한 질문을 던져본다. 오늘 하루 살고 내일 당장 죽는다면, 오늘 하루 무얼 하며 보낼 것인가?

내가 만난 대부분 사람들(;그렇다고 얼마 되지도 않지만)은 여행을 가든 일기를 쓰든 뭘 하든 죽음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은 친지와 함께하길 희망한다. 나는 다르다. 내가 만일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가방 하나 메고 바로 내 무덤 파러 간다. 내가 그러는 이유는 실리를 추구해서도 아니고 뭐 뭐해서도 아니라 사람을 믿지 못해서이다. 내 가족이라 해도 말이다. 이렇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하고 또 묻는 이유는 사람을 쉽사리 믿지 못하는 내 성향과 죽음에 대한 내 의견을 개진하고 위해서이다.

###############

###############

나는 이제껏 수천만 번 죽음을 들여다봐 왔다.

###############

###############

너도 알다시피 서양에선 문학을 체계화해서 배운다. 셰익스피어

비극을 통해 운명 앞에서의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고

희극을 통해 인생의 낭만을 향유할 수 있도록[각주:1]

###############

###############

네 죽음을 들여다봐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수천만 번 죽어왔다.

###############

###############

잊지 마라. 너는 나의 목표다.


12월 28일 2014년 

일요일 오전 2시 짐정리 하다가, 손유린



강남대성 기숙학원 선행반에 입소하는 당일 새벽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쓴 편지

쓸 주제는 많았지만 시간이 부족해 절반도 다 쓰지 못했다.

  1. 문학이란 무엇인가, 김대행, 문학사상사, p.17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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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폭(上)


내가 말하는 '생각의 폭'은 '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는 수준'이고 대체로 나이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식품판매장 과자 부문을 가보면 과자 사달라고 울부짖으며 엄마에게 떼쓰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연령대의 아이들은 자기들밖에 모른다. 엄마 지갑 사정은 신경도 안 쓰고 잠깐의 미각적 즐거움만을 위해 매장 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는 것 또한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좀 더 커서 초등학생이 되면, 대(大)자로 뻗어 울고불고 소리 지르는 것만이 최선이 아님을 깨닫고 엄마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엄마가 화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조용히 가만있다가, 엄마가 웃기라도 하면 애교부리며 조르기도 하고, 어제 받아쓰기 100점 받았단 걸 넌지시 이르며 자기만의 당위성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래도 그래도 아직은 자기들밖에 모른다. 중고등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기 시작하면, 이제 슬슬 엄마 생각도 하기 시작한다. 핸드폰 살 때 아빠 직업과 연봉도 생각하고 친구 집 크기와 핸드폰을 그네들의 그것들과 견주어가며 고르기도 한다. 그리고 제 딴에는 좋은 대학으로 보은하려 작심삼일 공부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잠깐이지만 진심으로 다른 사람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A : 김부장 XX 새끼. 아 그냥 때려치고 치킨집이나 할까.

B : 야야 참아. 네 처자식 생각도 해야지. 뭐 별 수 있냐. 우리 사는 게 다 그렇지...


위 장면과 같이 다른 한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는 걸 넘어, 그 사람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나 직장 같은 그 사람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부터는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느냐'에 따라 범인에서 성인까지 달라진다. 


사(私)를 넘어 공(公), 이(利)를 넘어 의(義)까지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 그것이 성인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싶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주말마다 하는 파트타임으로 돈독이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하는 시간을 늘리다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일을 그만둔 그 날부터 한 달간 '어떤 사업 아이템이 좋을까'를 온종일 고민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밥 먹거나 볼일 볼 때도 심지어 꿈에서도 항상 그 생각뿐이었다. 슈퍼에서 새우깡을 보면 '새우깡 왜 먹지? 맛도 없는데. 사람들은 이걸 왜 살까. 왜 팔까. 왜 만들까.' 같은 질문들을 자신에게 계속 물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하니, 내 멋대로 끼워 맞추기식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답이 나오더라. 어쨌든 처음에는 막연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나 스스로 여러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더라.


시작은 생산자였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생산자가 되어본 적이 없고, 또 제조 공정에 관해선 일자무식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기 쉽겠네/어렵겠네, 싸겠네/비싸겠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판매자부터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는데, 매장을 둘러 보며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과 연관 지으려 노력했다. 포장지 색, 광고문구, 배치 위치 등등 어떻게 해야 잘 팔릴지에 대해 최대한 깊게 생각하려 애썼다. 끝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넓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노인의 입장에서, 청년의 입장에서, 소년의 입장에서, 그리고 여자의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이렇게 한 달간의 고민 끝에 괜찮은 사업 아이템을 하나 찾아냈고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나는 첫 사업에 실패했다. 실패했지만, 하나의 사물을 두고 여섯 가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경험을 통해 생각의 폭을 비약적으로 넓힐 수 있었다.



11월 23일 2015년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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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대하여



  • 꿈을 가져야 한다

꿈이 있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 뭘 하든 꿈을 잊지 않는다.

만고의 길잡이인 북극성이나 나침반의 N극처럼

꿈은 그 사람, 그 인생의 지향점이 된다.


나는 석정이를 믿고 또 좋아한다. 꿈이 있어서 믿고, 꿈이 있어서 좋아한다.

석정이는 앞으로 어떤 고난을 겪어도, 언제나 꿈을 바라보고 다시 일어설 테니까.

가끔은 오랜 여정에 지쳐 때아닌 방황을 해도, 결국엔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갈 테니까.

난 석정이의 꿈 길 옆, 벤치에 앉아 따뜻한 둥굴레차 한 잔을 들고 석정이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나는 그래서 석정이를 믿고 또 좋아한다.


  • 꿈은 왜 꿈일까

꿈을 왜 꿈이라 부를까.


1.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2.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3.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사전으로 찾아보면 이렇게, 셋이나 비슷하지만 다른 뜻이 있는데 말이다. 이 세 가지를 내 방식대로 적절히 조합해보면


한 여름밤의 꿈처럼 아련하고

사막 한가운데의 신기루처럼 기묘한

그래서 그런지 더 내 손으로 분명히 이루고 싶은 그 무엇.

  

그래서 꿈은 꿈이 아닐까.


  • 어떤 것이 꿈일까

오늘 점심으로 육회를 배부르게 먹고 싶은 것도 꿈일까. 

매 연말 연초마다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고 살을 빼고 싶은 것 또한 꿈일까. 

소년 만화의 순진무구한 주인공처럼 세계 정복을 외치는 것 또한 꿈일까. 

모르겠다. 누군들 알 수 있을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고,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너의, 너만의 꿈인데 어느 누가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다만, 네가 그 어떤 무엇을 '꿈'이라 이르고 분명히 이루고자 한다면, 

그리고 너 스스로 다른 이 앞에 나서서 그 어떤 무엇을 '꿈'이라 당당히 내보이고자 한다면,

최소한 그 '꿈'에 걸맞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노력하지 않는 꿈은 꿈이라 말 할 수 없다. 

바라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수 없고, 한순간의 단순한 요행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어제보다 오늘 하루 더 꿈에 다가서려 애쓰는 당신들의 노력이 빛바래져선 안되니까.


  • 허석정

석정이는 도시계획사가 되기를 꿈꾼다.

관련 책이나 논문을 읽기도

도시계획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기도

연습장에 도시계획 스케치를 하기도 한다.


석정이는 꿈을 꾸고

어제보다 오늘 하루 더 다가서고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그리고 그렇게 반드시

이루어진다.


11월 22일 2015년

일요일 오후 3시

여행을 준비하며,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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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지기(秋月知己)


별이 아니다

별이 아니다

나는 별이 아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공허한 심연 속 어딘가

흩어지는 너를 찾아 나서는 나는

차라리 비루한 어둠이리라.


나는 얼마 없는 빛을 품고

너에게 다가가 꽃을 내밀면

너는 미소로 받아내어

밤하늘에 부치니

우리 달빛 환하게 빛나고 너는


별이 되리라

별이 되리라

너는 별이 되리라.


아, 너는 별이 되고 나는

너를 비추는 비루한 어둠이리라.



9월 28일 2015년

월요일 오후 6시

가을 하늘 아래 장엄한 저녁 노을 속에서

화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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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공간을 나눈다


나에겐 너무도 당연한 어둠을

넌 빛으로 자르고 조각내어

전에 없던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었구나. 


나도 너처럼 

벽 하나, 기둥 하나 세우지 않고도

존재하는 그대로 믿고

보이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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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8월 4일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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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더위가 끝나지 않는다. 

더위 때문에 밖에 나갈 엄두조차 못 내고,

온종일 선풍기만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이따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설레여 창 밖을 바라보면 

무엇하나 변한 것 없이 눈 부신 태양과 하늘만이 보이고

그러다 아차 하는 순간, 또다시 밀려오는 더위에

체념한 채, 대(大) 자로 뻗는다.



8월 21일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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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꽃의 소묘(素描), 백자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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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글을 남긴 지 1년하고도 반 정도가 지났습니다. 계절이 다섯 번이나 바뀌는 긴 시간이죠. 예전에 쓴 글 말마따나, 이 곳에 꾸준히 글을 쓰려 했지만, 고질병을 이겨내지 못해 단 두 개의 글[각주:1]만을 올리고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가만히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조금씩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더는 연락이 닿지 않는 옛 친구들을 수소문하여 만나기도 하고, 또 겨우 알아볼 법한 서투른 글씨로 꾸밈없는 진심을 담아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여전히 단어 하나하나 남기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인터넷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무얼 말하고 싶은지를 틈틈이 적어두었습니다. 다시 여러 사람 앞에 나설, 언제 올지 모를 그날을 위해 잊지 않으려 적어두었죠.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습니다. 세상과 등지고 자신을 옭아매어 밀실 안에 가두는 것은 오늘까지 해두고, 이제 당당히 광장으로 나가려 합니다. 광장은 저 혼자만이 아닌 모두의 공간이다 보니, 좋든 싫든, 많은 일을 겪게 되겠죠. 따스한 햇볕 아래 꽃내음을 맡으며 유유히 걷는 좋은 일도 있을 것이고, 새 찬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좋지 못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뭐가 되었든, 혼자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연하게도, 청명[각주:2]이 시작되는 오늘은 출사표를 내기에 참 좋은 시기입니다. 겨우내 꽁꽁 언 땅을 녹이고 싹을 틔워줄 봄비가 내리기 전에 논밭을 갈며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이죠. 이렇게 지금의 제 상황과 비슷한 것을 보면, 하늘조차 제 뜻을 반기는 것만 같습니다. 농부가 한 곳에 터를 잡아 일 년 내내 땀 흘려 일할 논밭을 일구는 것처럼, 저 또한 오늘부로 그럴 것입니다.


[각주:3]


4월 5일 2014년


  1. 9월 25, 26일 2012년 [본문으로]
  2. 24절기 중 하나로 춘분과 곡우 사이에 든다. 이 날 부터 날이 풀리기 시작해 화창해지기 때문에 청명이라고 한다. 농가에서는 이 무렵 바쁜 농사철에 들어간다. [네이버 지식백과] 청명 [淸明] (두산백과, 두산백과) [본문으로]
  3. 논갈이, 김홍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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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화월선 유한나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꽃이 되길 바라느냐.


곧 멀리 날아갈 민들레 같은 너에게

난 꽃이기보단 바람이고 싶어라.



한국에 들어온 지 3년 차. 아토피가 어느 정도 호전되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지 말지 고민을 하던 차.

문답으로 같이 지은 내 인생 최고의 시.

가장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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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감기 일지


하루 11월 30일 토요일

발열, 콧물

열이 조금 나며, 이따금 콧물이 나온다.


이틀 12월 1일 일요일

발열, 콧물, 두통, 몸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 콧물이 많이 나오며 몸살 동안 심해 일어나기조차 어렵다.


사흘 12월 2일 월요일

발열, 콧물, 기침, 옅은 가래

콧물이 많이 나오며, 기침이 시작되어 말을 길게 하지 못한다. 옅은 가래도 조금씩 나온다. 


나흘 12월 3일 화요일

발열, 콧물, 기침, 짙은 가래

콧물은 많이 나오지 않지만, 대신 기침이 잦고 가래의 색도 짙다.


닷새 12월 4일 수요일

발열, 콧물, 잦은 기침, 짙은 가래

콧물이 많고 기침이 잦으며 가래의 색도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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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졌다. 벌써 겨울이 온 것만 같다.


10월 11일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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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월선


너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우며

언제나 보이는 그대로 화사하다. 


너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조차 향기롭고

네가 바라보는 시선 또한 따스하다. 


모두가 이성에 눈이 멀어 침묵할 때. 

너 홀로 눈물 흘려 일깨우고


모두가 감성에 미쳐 울부짖을 때

너 홀로 두 팔 벌려 감싸 안으니


너는 나의 신이고. 만인의 여신이다.


오 신이시여, 바라옵건데 들어주소서.

오늘 당장 헤어지고 

내일 바로 잊혀질

우리 사이가 아닐 것임을.

내가 기억하고 네가 잊지 아닐 것임을.


오 신이시여, 바라옵건대 들어주소서.



2월 07년부터 지금까지(12월 15년) 써오고 있는 시.

한 사람을 바라보며 썼으나 지금은 잊혀지고

시상이 메말라 도무지 진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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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전 

두고두고 아름다움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 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물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또 한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 한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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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서성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게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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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웬만해서는 인터넷에 글을 남기지 않습니다. 만인을 대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꺼림칙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익명으로 쉽게 드나들며 여러 정보를 쉽게 주고받는 곳'이라 합니다. 하지만 요즈음 이 말을 되돌아보면 꼭 그렇지마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디나 닉네임 같이 어느 특정한 흔적 한두 개만으로 그 사람의 신상을 넘어 주변 인간관계까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캐낼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인터넷에 제 자취를 남기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아주 지독한 눈팅족이기도 하죠.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카페 회원가입과 동시에 등업신청란을 볼 때입니다. 준회원에서 정회원으로 넘어가는 길목은 그리 험하지 않습니다. 게시물 한두 개와 댓글 열 개 정도겠지요. 


신규회원들이 부담 없이 채울 만큼 가벼운 조건인 건 분명 잘 압니다만, 저로서는 그 댓글 하나 쓰는 것조차 힘듭니다.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내가 남긴 그 아주 조그마한 댓글조차 모조리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말입니다. 이런 어쩔 수 없는 때가 오면, 저는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글을 남깁니다. 만인이 보아도 아무런 문제를 찾지 못할 만큼 간단하게 말입니다.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이 카페에 새로 가입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같이 국어 교과서에 나올 만큼 판에 박힌 말투로 말이죠.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는 저도 활발한 제 또래들처럼 SNS[각주:1]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싸이월드가 대유행이었던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저도 제 사진을 비롯한 여러 재미있는 사진을 올리며 나누고 친구들 방명록에 댓글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싸이월드는 윈도 95 초록색 바탕화면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비공개로 해 놓았고 싸이월드를 비롯한 모든 SNS를 통해서 사람들과 연락하지 않습니다. 역시 인터넷의 모든 것은 기록에 남는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각주:2]


지금 제가 이렇게 장문의 글을 남기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만, 누구나 어렵지 않게 만인을 대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유일무이한 매체인 인터넷의 덕을 저도 누리고 싶습니다. 


저도 어제부로 이 곳을 통하여 만인을 대상으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를 불특정 다수인 그 어떤 만인을 대상으로.

그동안 제 머리나 가슴 속에 갇혀 있어야만 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9월 26일 2012년


  1. Social Network Service [본문으로]
  2. 글쓴이의 싸이월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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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비밀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저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저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람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장단점 둘 다를 보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사람들이 제 단점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언젠가는 드러날 수밖에 없을지라도 저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제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저의 선한 모습만 보이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 앞에서 쓸데없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 언행을 최대한 절제하고 단점을 감추며 말이죠. 그렇다고 해도, 특별히 장점을 내세우지도 않았습니다. 장점이란, 스스로 내보였을 때 모양새가 썩 보기 좋지 않기도 하고, 스스로 내보이지 않아도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제 비밀과 고민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위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오랜 시간 살아오다 보니, 저 자신에게 여러 가지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서툴러진 사교성 편협해진 주변 대인 관계


사교성이 서툴러지다 보니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껄끄러워지고, 기존의 대인 관계 또한 점점 좁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것을 향해 도전 조차하지 않으려는 멍청한 놈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조차 저는 이 글을 수십, 수백 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이 익명의 글이 제가 쓴 것이라고 알 수 없을 텐데 말이죠. 예전에는 제 나름대로 시와 글을 써서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제일 행복한 일이었는데, 그때의 제 모습과 비교해보면, 참 멀고도 먼 길을 온 것 같습니다.


글 쓰는 것이 마냥 즐겁고 매사에 밝았던 과거의 나를 향하여

오늘부로 이 먼 길을 되돌아가려 합니다. 

이 먼 여정의 끝에서 미소 지으며 기다리고 있을 미래의 나를 위하여.


9월 25일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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