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유문(春香遺文)

서정주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에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가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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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2014년

화월선


나는 너희를 통해 나 자신과 세상을 바로 보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느끼고 생각해온 모든 것들을 너희에게 비춰봄으로써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된다. 

고로, 너희는 내 자화상임에 동시에

이 넓은 세상을 헤쳐나감에 필요한 등대이기도 하다.


2월 26일 2014년

수요일 오후 7시

송슬아 이용구 이로빈에게, 화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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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2014년

화월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모든게 꿈만 같고 아련해지네. 


그만큼 행복했기에 

벌써 추억이 된것이겠지.  


추억으로서 돌아보니 

이만큼 또 슬퍼지고,


내일 다시 생각하면

또 웃기도 울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난 좋아.

고마워 얘들아. 


2월 2일 2014년

일요일 오후 11시

오남리에서, 화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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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아무 일 없이 편지를 잘 받았다니 다행이다.

그 소식을 기다렸던 지난 열흘은, 기다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것은 여느 기다림과 달리 매우 특별한 것이었는데, 특히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난 뒤의 그 느낌은 활시위를 막 떠나는 화살을 보는 것 같이 아쉬움만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나서 바로, 너로부터 들려올 좋은 소식이 기대돼 내 마음은 이내 '기다림'으로 다시 채워졌다. 마치 내일 소풍 가는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듯이, 그날 밤은 오랫동안 내 마음을 설레게 해주었다.


5월 20일 2013년

월요일 오전 3시 40분

부러진 화살을 보고,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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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지난 10월 28일에 지나간 세월 탓에 느려지고 액정이 깨져 언제나 나에게 불편함을 주던 핸드폰을 뒤로하고 새 아이폰을 가지고 대리점을 나올 때는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언제와도 같이 무료했던 세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화사하고 신비로워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 연락을 더 이상 주고받지 않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들을 정리하는데, 남은 사람들이 얼마 없다는 것을 본 순간, 아이폰을 손에 처음 쥐었을 때 느꼈던 청아함은 저 멀리 날아가고, 오직 공허만이 내 가슴에 남아 쓸쓸함이 가득하였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그 공허를 오랫동안 가슴 깊이 새기고,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 하나하나를 천천히 다시 보았는데, 그들 대부분이 나와 피로 맺어져, 죽을 때까지, 혹은 죽어서도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낼 친척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에게 친척이 아닌 친구는 거의 없다고 해야겠다.


너는 그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분명히 나의 친구로서, 텅 빈 내 가슴을 환하게 밝히는 등불로서 존재한다. 나는 그 어떤 영화나 책을 읽더라도, '친구'라는 단어를 듣거나 보게 된다면, 반드시 너를 내 가슴에 담아둘 것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너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이며, 너 또한 그러하기에 이 편지를 읽고 있는 것이다.


친구여, 나에게도 네 가슴 속 빈자리 하나 내어다오.

너 좋을 때 멀리서 웃음 한 줌 보탤 수 있게

너 힘들 다가가 내 작은 품 내어줄 수 있게

네 가슴 속 빈자리 하나 내어다오.

누구보다 자신 있고 당당하게

나 그 한 자리, 해낼 수 있소.


11월 3일 2013년

일요일 오후 4시

여행을 준비하며,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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