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문
안녕하세요. 손유린입니다. 제 이름을 말할 때 만큼은 누구보다 당당하고 싶어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렇게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어 야속하네요.
여러분은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매일 조용히 하라고 화내고 소리치고 명령하는 저에 대해 말이에요. 사실 대강은 알고 있어요. 저도 눈치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딱 보면 느껴져요. ‘아, 이 친구가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는구나.’라고요. 심지어 누가 나를 싫어한다더라. 어떤 욕을 한다더라. 이런 얘기조차 제 귀에 들려옵니다. 듣고 싶어 듣는 게 아니라 그냥 여기저기서 알려줘요. 저도 그런 것 가지고 뭐라 안 해요. 해서도 안 되고요. 그게 당연한 걸 아니까요. 대통령도 욕먹고 심지어 여기 선생님들도 욕먹는 마당에 제가 욕 안 먹는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욕만큼이나 조언도 많이 받았어요. 제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형 그냥 욕하면서 윽박지르세요.’부터 ‘하던 대로 해라’나 구체적인 문제 요인과 해결방안까지 묶어서 준 친구도 있어요. ‘너무 명령조로 하지 말고 청유 조로', ‘말로 하지 말고 “쉬~”로 정숙 분위기를 유도'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거나. 고맙단 말을 하지 못했는데, 못 한 거에요. 화나서 무시한 게 아니라 하고 싶었지만 하면 안 되니까. 해서는 안 되니까. 할 수 없으니 못 한 겁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그 친구는 문제 요인을 말투로 꼽았는데 여러분들이 제 말투를 권위적으로 받아들였나 봐요. 그러나 저는 권위주의를 혐오해요. 그리고 저는 나이 관념이 별로 없어요. 나이를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어요. 억지로 서열 세우려고 물어보는 건가 싶어요. 저에게 있어서 위아래 5살 차는 그냥 친구예요. 한두 살 더 먹는다고 뭐 차이가 있을까요. 나이 많은 또라이도 많은데 말이죠. 실제로 저는 저보다 서너 살 어린 친구가 있어요. 3살 많은 여자친구도 있고요. 그 여자 친구에겐 야라고 편히 불렀고, 남자 친구도 저를 편히 대해줬어요. 그렇다고 막 지내진 않았어요. 친구 사이라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킬 것은 지켜요. 제 말투는 거기에서 나온듯해요. 하지만 이제 바꿔야겠죠.
제가 이렇게 나와 말씀드리는 것도 정말 그냥 단순히 관심받고 싶어서가 아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관종 아닙니다. 아니에요. 하나하나 다 계획된 전략이었어요. 조용히 시키다 보면, 반 전체에 저 손유린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일 수밖에 없는데 남지 친구들 같은 경우는 쉬는 시간에 가서 ‘미안해, 아까는 내가 좀 심했어. 너 착한 거 내가 알고 모두가 아는데 내가 좀 욱했어. 미안하다. 이 못난 형 네가 좀 이해해줘라. 부탁한다.’ 하면 대부분 풀려요. 전부는 안 되겠지만. 그런데 여자 친구들에겐 그게 안 돼요. 그리고 반 전체 한 명 한 명씩 토닥토닥 할 수도 없는 거고요. 그래서 눈치로 저에 대한 스트레스가 좀 쌓였다 싶으면 기회 봐서, ‘나도 똑같은 수험생이고 우린 같은 목표를 지향한다. 미안하고 같이 으쌰으쌰 해보자.’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즉흥적으로 급하게 하다 보니까 중간에 말실수도 하고 되려 오해가 생겨 역효과도 나서 많이 당황했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매번 숨 한 번 크게 내쉬고, 마음속으로 주문도 몇 번 걸고, 각오 다시 한 번 새기고 들어왔어요. ‘오늘 하루도 무사히 버틸 수 있기를’이라고.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여러분들 중 혹시 노인정이나 보육원 같은 곳에서 사회복지 봉사활동 꾸준히 해 본 사람 있어요? 아마 착한 사람일 거예요. 왜냐하면,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사람을 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강자 앞에서 비굴한 사람이 절대다수라면 약자에게 베푸는 사람 또한 절대 소수예요. 제가 얼마 동안 노인정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 말벗 해드리면서 저 자신에게 느낀 게 있는데요, 저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착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에요. 저는 저 자신을 잘 알아요. 그곳에서 말벗 해드리는 동안, 그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 아 그리고 제가 왜 갔느냐면, 사람에 대해 알고 싶었어요. 저는 사람을 믿지 않아요. 저 자신 빼고는. 가족 포함해서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을 믿고 싶어요.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어서 끊임없이 의심해요. 라이어게임의 아키야마가 말한 것처럼 조건 없는 신뢰는 무책임한 것으로 생각하고, 굳센 신뢰 이전에는 반드시 철저한 의심이 선행된다고 믿어요. 그래서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서 갔어요. 가서 제가 느꼈던 소회를 말씀드리자면,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꿈이 있으시냐고 여쭈면 처음에는 무르시다가 할머니들은 자식 걱정 하시고, 할아버지들은 ‘비행기 타보고 싶다’, ‘금강산 가보고 싶다’였는데 남녀를 막론하고 대부분 똑같이 하신 말씀이 ‘빨리 죽고 싶다’였어요. 제가 느끼기로 농이 아니라 진짜였어요. 자식에게 해 끼치기 싫다는 이유로.
이제 끝내겠습니다. 205호인가 203호에서는 주번을 주번이라 부르지 않고 섬김이라 부르는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생활담임 선생님께서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줄로만 알았는데 오늘이 와서야 비로소 그 참뜻을 깨달은 것 같아요. 반장이란 허울뿐인 이름 뒤에는 매일 주번이란 이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주번이란 저 섬김이란 이름처럼 하루 종일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고생해야 하는 것을 보면 반장 또한 '매일 섬김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화내고 소리치고 명령하는 분위기보다 섬기는 마음으로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40명 전부가 저를 좋아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저는 40명 전부를 사랑할 수 있고, 또 그럴 겁니다. 저는 그만한 능력이 있고 의지 또한 있으니까요.
3월 15일 2015년
일요일
모두의 앞에서, 손유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