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편지.
전하고 싶은 마음은 산더미같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두서없이 갈겨써 보낸다.
내가 아버지 노트북을 살 때, 마치 네 아버지 일인 것처럼 나보다도 더 열심히 알아봐 줘서 고맙다. 끝내 내가 네 의견을 따르진 않았는데, 내가 아직 모자라 그런 것이니 너그러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네 그런 모습이 참 좋았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하여 잠깐의 미운 소리를 할 줄 아는 네가 내 제일 소중한 친구라는 점이 자랑스럽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지금 수능 준비하는 것도 전부 네 덕 아니냐. 정말 너는 내 삶의 은인이라 칭해도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
내가 누군가를 이긴다는 것은, 누군가가 나로 인하여 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다시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나는 세상을 다 가질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믿고, 믿는 대로 행하기 위해서, 나는 세상을 다 가질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내 사람이라면 의미 없다. 내가 이기나 내 사람이 이기나 결과는 zero-sum으로 마찬가지니 말이다. 덧붙여, 만일 그 대상이 너라면, 내 가장 소중한 친구인 너라면, 나는 너를 위하여 몇 번이라도 즐겁게 지고 또 질 것이다. 나에게 너는 넉넉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지독하리만큼 사람을 믿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사업하시다 하도 많이 사기당하셔서 그런 탓도 있지만, 애초에 나는 의심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안 그래도 째진 나의 작은 눈으로, 더 부릅뜨고 세상 사람들 모두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진 않는다. 라이어게임의 아키야마가 말한 것처럼 나 또한 조건 없는 신뢰는 무책임한 것으로 생각하고, 굳센 신뢰 이전에는 반드시 철저한 의심이 선행된다고 믿는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너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의심밖에 하질 못했다. 천성이 그런지 가정사 때문에 그런지 지독한 애정결핍으로, 나는 신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관심만을 갈구하며 미쳐 날뛰는 망아지였다. 그런 나에게 너는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하기에 부족할 만큼 소중하다.
여기서 어쭙잖게 진부한 질문을 던져본다. 오늘 하루 살고 내일 당장 죽는다면, 오늘 하루 무얼 하며 보낼 것인가?
내가 만난 대부분 사람들(;그렇다고 얼마 되지도 않지만)은 여행을 가든 일기를 쓰든 뭘 하든 죽음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은 친지와 함께하길 희망한다. 나는 다르다. 내가 만일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가방 하나 메고 바로 내 무덤 파러 간다. 내가 그러는 이유는 실리를 추구해서도 아니고 뭐 뭐해서도 아니라 사람을 믿지 못해서이다. 내 가족이라 해도 말이다. 이렇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하고 또 묻는 이유는 사람을 쉽사리 믿지 못하는 내 성향과 죽음에 대한 내 의견을 개진하고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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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껏 수천만 번 죽음을 들여다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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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다시피 서양에선 문학을 체계화해서 배운다. 셰익스피어
비극을 통해 운명 앞에서의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고
희극을 통해 인생의 낭만을 향유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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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죽음을 들여다봐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수천만 번 죽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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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마라. 너는 나의 목표다.
12월 28일 2014년
일요일 오전 2시 짐정리 하다가, 손유린
강남대성 기숙학원 선행반에 입소하는 당일 새벽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쓴 편지
쓸 주제는 많았지만 시간이 부족해 절반도 다 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