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문


선물은 가장 소중한 것으로 한다.

가장 소중한 나의 무엇을 떠나보내는 슬픔보다

당신께 건넴으로서 되돌아오는  기쁨이

땅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적실만큼 지대하기에

나에게도 당신께도, 선물은 가장 소중한 것으로 한다.


가진 하나 없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의 이름이며

나의 , 수필, 그리고 편지 따위가 다음이다.

나의 선물, 모든 마음 다하여 당신께 보내니,

이름 모를 너의 그것.

그것에 준하는, 아니 어쩌면 값질지 모를 그것.

바라만 보아도 아름다운 그것. 함께 하.


나의 눈물. 너의 웃음.

줌씩만 나눠 보태기만 하량이면

하해와도 같이 넓은 은혜

하루가 멀다 하고 채워지리라.

능히 우리는 그럴만하다.

하나의 꽃으로 서른 여덟가지의 향기로.


5 14 2015

목요일 오전 8 30

가시지 않는 졸음을 무르며, 손유린



스승의 날 롤페이퍼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쓴 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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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어버이께.


천리도 타향인 이곳에서 설을 쇤지

벌써 여러 달이 지났습니다.

당신께서 담아주신 떡국과 봄나물을 먹고나서야 비로소

겨우내 오지 않던 봄이

몰래 왔음을 알았습니다.

수릿날 절편도 삼복날 더위도

높은 가을 하늘 아래 장엄한 저녁노을도

당신의 손길을 거쳐 제게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가고

날이 오면,

하루, 절대 오지 않을 같았던

날이 오면

저는 하해와 같은 어버이의 품을 떠나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는 멀리 이루어지며

하나의 아들과 딸이

하나의 어버이를 것입니다.

어머니, 아들 왔어요!’

잘생긴 아들이 왔어요!’


5 8 2015

금요일 오후 12 30

강대기숙 식당
어버이의
만수무강을 소원하며,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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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勇氣)

화월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몸을 던져 희생하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네 마음속 태풍을 잠재우는 것 또한 위대한 용기다


12월 8일 2015년

화요일 오후 9시

권세훈 선생님을 뵙고

옛 연습장을 들춰보며, 화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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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서: 일장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그 날이 오면

심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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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유문(春香遺文)

서정주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에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가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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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2014년

화월선


나는 너희를 통해 나 자신과 세상을 바로 보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느끼고 생각해온 모든 것들을 너희에게 비춰봄으로써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된다. 

고로, 너희는 내 자화상임에 동시에

이 넓은 세상을 헤쳐나감에 필요한 등대이기도 하다.


2월 26일 2014년

수요일 오후 7시

송슬아 이용구 이로빈에게, 화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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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2014년

화월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모든게 꿈만 같고 아련해지네. 


그만큼 행복했기에 

벌써 추억이 된것이겠지.  


추억으로서 돌아보니 

이만큼 또 슬퍼지고,


내일 다시 생각하면

또 웃기도 울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난 좋아.

고마워 얘들아. 


2월 2일 2014년

일요일 오후 11시

오남리에서, 화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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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아무 일 없이 편지를 잘 받았다니 다행이다.

그 소식을 기다렸던 지난 열흘은, 기다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것은 여느 기다림과 달리 매우 특별한 것이었는데, 특히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난 뒤의 그 느낌은 활시위를 막 떠나는 화살을 보는 것 같이 아쉬움만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나서 바로, 너로부터 들려올 좋은 소식이 기대돼 내 마음은 이내 '기다림'으로 다시 채워졌다. 마치 내일 소풍 가는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듯이, 그날 밤은 오랫동안 내 마음을 설레게 해주었다.


5월 20일 2013년

월요일 오전 3시 40분

부러진 화살을 보고,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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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지난 10월 28일에 지나간 세월 탓에 느려지고 액정이 깨져 언제나 나에게 불편함을 주던 핸드폰을 뒤로하고 새 아이폰을 가지고 대리점을 나올 때는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언제와도 같이 무료했던 세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화사하고 신비로워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 연락을 더 이상 주고받지 않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들을 정리하는데, 남은 사람들이 얼마 없다는 것을 본 순간, 아이폰을 손에 처음 쥐었을 때 느꼈던 청아함은 저 멀리 날아가고, 오직 공허만이 내 가슴에 남아 쓸쓸함이 가득하였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그 공허를 오랫동안 가슴 깊이 새기고,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 하나하나를 천천히 다시 보았는데, 그들 대부분이 나와 피로 맺어져, 죽을 때까지, 혹은 죽어서도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낼 친척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에게 친척이 아닌 친구는 거의 없다고 해야겠다.


너는 그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분명히 나의 친구로서, 텅 빈 내 가슴을 환하게 밝히는 등불로서 존재한다. 나는 그 어떤 영화나 책을 읽더라도, '친구'라는 단어를 듣거나 보게 된다면, 반드시 너를 내 가슴에 담아둘 것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너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이며, 너 또한 그러하기에 이 편지를 읽고 있는 것이다.


친구여, 나에게도 네 가슴 속 빈자리 하나 내어다오.

너 좋을 때 멀리서 웃음 한 줌 보탤 수 있게

너 힘들 다가가 내 작은 품 내어줄 수 있게

네 가슴 속 빈자리 하나 내어다오.

누구보다 자신 있고 당당하게

나 그 한 자리, 해낼 수 있소.


11월 3일 2013년

일요일 오후 4시

여행을 준비하며,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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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죽은 사랑을 싣고

화월선


나 오늘 하루 속 편히 보낼 수 있었던 까닭은

그대가 밤을 지새우며 정성 들여 끓여준

호박죽 한 그릇 때문이리라.


그대가 나를 생각함에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듯

나 또한 이 마음을 전함에 있어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고백하노라.


꽃 같은그대의 고운 얼굴과 마음씨,

고이고이 간직하길 바라고

바라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며

내 마음을 담아 보내노라.



남몰래 호박죽을 챙겨 준 영양사 누나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쓴 편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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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서시(序詩)

화월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 해결이 될까.

하지만 시간을 되돌리지는 못한다.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우리들의 세상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도 모를 기적이 일어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나는 내가 지금 바라는 대로

행복해 질 자신이 없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이

로마의 영웅들을 존경하고

서태지의 음악을 좋아하며

단 하나의 사랑에 목메 사는

손유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아직도 간절히

이제는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그때로 돌아가길 원하나 보다.

이제서야 나는

그때의 그리움을 사랑하고

그때의 슬픔마저 추억으로

간직할 준비가 된 것이겠지.


자, 지금부터 나는 기적을 만나러 가겠다.



내 미래의 유서 혹은 죽음이 임박했을 황혼기에

마지막으로 쓸 수필의 서시. 고1 무렵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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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표(出師表)


내 꿈은 세계정복이다.

벌써부터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지 마라.

그렇다고 또 불가능하게 '보인다'고도 하지 마라.

그렇게 가능성만을 운운하다가는

이만한 가치가 있는 꿈을 죽을 때까지

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

나는 너희와 다르게 이만한 꿈을 품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 세계를 제패해

너희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세계의 패권을 잡았던 나도

지는 태양이 되어 왕좌에서 내려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몇십 년 전에 내가 했던 맹세를,

몇십 번을 실패해도 이것 하나만큼은

죽어도 지키겠다는 이 꿈의 맹세를,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다시 되뇌겠지.


"나 손유린은 지금 이 순간부터

돈에 대한 열정과 꿈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을

내 인생을 걸고 맹세합니다."


1월 16일 2008년

수요일 오후 7시



고1, 사업을 천직으로 삼고 비장한 각오로 첫 사업에 임하며 쓴 출사표.

공자가 15세에 학문에 뜻을 둔 것을 본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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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요. 

이젠 안녕이야. 

전국 일주 9 10. 

언제를 돌아봐도

기억나는 웃음뿐이야. 

고마워요. 고마워.


경상남도 양산시

김성수 윤여준 안지혁 김정환 김진우 이준헌 홍수민

부산광역시

이준헌 홍수민

경상남도 창원시

서창건

경상북도 김천시

박준호

충청북도 청주시

허석정 변민지 박준호 서창건

서울특별시

양준용


12월 2일 2015년

수요일 오후 6시

사릉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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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P


반갑습니다. 저는 22살 남자 대학생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사람처럼 저 역시나 어렸을 때부터 온천이 좋다 하여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고 심지어 금강산 관광 또한 치료 목적으로 다녀올 정도로 치료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아토피가 왜 아토피(Atopy)겠습니까.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비정상적인 반응', '기묘한', '이유를 알 수 없는'이란 그리스어로 해석되는데, 그 말마따나 지금 내가 하는 이 치료법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도 모른 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수없이 많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새 치료 방법을 찾아다녔습니다만, 아토피가 호전되지 아니한 것은 당연했고, 오히려 악화될 때도 숱하게 많았습니다.


제 나이 열 일곱, 중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학업과 아토피 치료를 병행하고자 청운의 꿈을 품고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습니다만, 저 스스로의 몫인 몸관리가 뜻대로 안 돼 흉측한 몰골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대학병원을 꾸준히 다니며 아토피 치료에 일신 전념하고 있습니다. 치졸하고 옹졸한 변명이오. 부끄러워 감추고 싶을 핑계이기도 합니다만, 제 잘못은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알지 못하고, 애매한 것을 애매하게 알고 있기에 옳고 그름의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지금 저에게는 귀사의 '아토피 혁명'이 절실합니다. 제 나이 이제 스물 둘. 귀사의 '아토피 혁명'에 도전합니다. 분명 이러한 도전은 처음이 아닙니다. 또한, 마지막이 아니 될 수도 있습니다. 그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또 하나의 도전'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걸 잘 압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우연이 인연이 되고 인연이 필연, 그리고 운명으로 귀결되듯이

이러한 실낱같은 '아토피 혁명'과의 우연을

아름다운 운명으로 끝맺음할 수 있도록 귀사께서 살펴봐 주시길 바랍니다.

분명 대한민국의 스물둘의 나이는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 나갈 나이니까요.


3월 17일 2014년

금요일 오후 4시

스물 둘, 대한민국의 청춘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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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편지.


전하고 싶은 마음은 산더미같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두서없이 갈겨써 보낸다.


내가 아버지 노트북을 살 때, 마치 네 아버지 일인 것처럼 나보다도 더 열심히 알아봐 줘서 고맙다. 끝내 내가 네 의견을 따르진 않았는데, 내가 아직 모자라 그런 것이니 너그러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네 그런 모습이 참 좋았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하여 잠깐의 미운 소리를 할 줄 아는 네가 내 제일 소중한 친구라는 점이 자랑스럽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지금 수능 준비하는 것도 전부 네 덕 아니냐. 정말 너는 내 삶의 은인이라 칭해도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


내가 누군가를 이긴다는 것은, 누군가가 나로 인하여 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다시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나는 세상을 다 가질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믿고, 믿는 대로 행하기 위해서, 나는 세상을 다 가질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내 사람이라면 의미 없다. 내가 이기나 내 사람이 이기나 결과는 zero-sum으로 마찬가지니 말이다. 덧붙여, 만일 그 대상이 너라면, 내 가장 소중한 친구인 너라면, 나는 너를 위하여 몇 번이라도 즐겁게 지고 또 질 것이다. 나에게 너는 넉넉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지독하리만큼 사람을 믿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사업하시다 하도 많이 사기당하셔서 그런 탓도 있지만, 애초에 나는 의심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안 그래도 째진 나의 작은 눈으로, 더 부릅뜨고 세상 사람들 모두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진 않는다. 라이어게임의 아키야마가 말한 것처럼 나 또한 조건 없는 신뢰는 무책임한 것으로 생각하고, 굳센 신뢰 이전에는 반드시 철저한 의심이 선행된다고 믿는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너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의심밖에 하질 못했다. 천성이 그런지 가정사 때문에 그런지 지독한 애정결핍으로, 나는 신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관심만을 갈구하며 미쳐 날뛰는 망아지였다. 그런 나에게 너는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하기에 부족할 만큼 소중하다.


여기서 어쭙잖게 진부한 질문을 던져본다. 오늘 하루 살고 내일 당장 죽는다면, 오늘 하루 무얼 하며 보낼 것인가?

내가 만난 대부분 사람들(;그렇다고 얼마 되지도 않지만)은 여행을 가든 일기를 쓰든 뭘 하든 죽음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은 친지와 함께하길 희망한다. 나는 다르다. 내가 만일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가방 하나 메고 바로 내 무덤 파러 간다. 내가 그러는 이유는 실리를 추구해서도 아니고 뭐 뭐해서도 아니라 사람을 믿지 못해서이다. 내 가족이라 해도 말이다. 이렇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하고 또 묻는 이유는 사람을 쉽사리 믿지 못하는 내 성향과 죽음에 대한 내 의견을 개진하고 위해서이다.

###############

###############

나는 이제껏 수천만 번 죽음을 들여다봐 왔다.

###############

###############

너도 알다시피 서양에선 문학을 체계화해서 배운다. 셰익스피어

비극을 통해 운명 앞에서의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고

희극을 통해 인생의 낭만을 향유할 수 있도록[각주:1]

###############

###############

네 죽음을 들여다봐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수천만 번 죽어왔다.

###############

###############

잊지 마라. 너는 나의 목표다.


12월 28일 2014년 

일요일 오전 2시 짐정리 하다가, 손유린



강남대성 기숙학원 선행반에 입소하는 당일 새벽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쓴 편지

쓸 주제는 많았지만 시간이 부족해 절반도 다 쓰지 못했다.

  1. 문학이란 무엇인가, 김대행, 문학사상사, p.17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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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P  (0) 2015.12.03

생각의 폭(上)


내가 말하는 '생각의 폭'은 '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는 수준'이고 대체로 나이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식품판매장 과자 부문을 가보면 과자 사달라고 울부짖으며 엄마에게 떼쓰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연령대의 아이들은 자기들밖에 모른다. 엄마 지갑 사정은 신경도 안 쓰고 잠깐의 미각적 즐거움만을 위해 매장 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는 것 또한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좀 더 커서 초등학생이 되면, 대(大)자로 뻗어 울고불고 소리 지르는 것만이 최선이 아님을 깨닫고 엄마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엄마가 화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조용히 가만있다가, 엄마가 웃기라도 하면 애교부리며 조르기도 하고, 어제 받아쓰기 100점 받았단 걸 넌지시 이르며 자기만의 당위성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래도 그래도 아직은 자기들밖에 모른다. 중고등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기 시작하면, 이제 슬슬 엄마 생각도 하기 시작한다. 핸드폰 살 때 아빠 직업과 연봉도 생각하고 친구 집 크기와 핸드폰을 그네들의 그것들과 견주어가며 고르기도 한다. 그리고 제 딴에는 좋은 대학으로 보은하려 작심삼일 공부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잠깐이지만 진심으로 다른 사람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A : 김부장 XX 새끼. 아 그냥 때려치고 치킨집이나 할까.

B : 야야 참아. 네 처자식 생각도 해야지. 뭐 별 수 있냐. 우리 사는 게 다 그렇지...


위 장면과 같이 다른 한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는 걸 넘어, 그 사람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나 직장 같은 그 사람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부터는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느냐'에 따라 범인에서 성인까지 달라진다. 


사(私)를 넘어 공(公), 이(利)를 넘어 의(義)까지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 그것이 성인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싶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주말마다 하는 파트타임으로 돈독이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하는 시간을 늘리다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일을 그만둔 그 날부터 한 달간 '어떤 사업 아이템이 좋을까'를 온종일 고민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밥 먹거나 볼일 볼 때도 심지어 꿈에서도 항상 그 생각뿐이었다. 슈퍼에서 새우깡을 보면 '새우깡 왜 먹지? 맛도 없는데. 사람들은 이걸 왜 살까. 왜 팔까. 왜 만들까.' 같은 질문들을 자신에게 계속 물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하니, 내 멋대로 끼워 맞추기식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답이 나오더라. 어쨌든 처음에는 막연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나 스스로 여러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더라.


시작은 생산자였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생산자가 되어본 적이 없고, 또 제조 공정에 관해선 일자무식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기 쉽겠네/어렵겠네, 싸겠네/비싸겠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판매자부터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는데, 매장을 둘러 보며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과 연관 지으려 노력했다. 포장지 색, 광고문구, 배치 위치 등등 어떻게 해야 잘 팔릴지에 대해 최대한 깊게 생각하려 애썼다. 끝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넓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노인의 입장에서, 청년의 입장에서, 소년의 입장에서, 그리고 여자의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이렇게 한 달간의 고민 끝에 괜찮은 사업 아이템을 하나 찾아냈고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나는 첫 사업에 실패했다. 실패했지만, 하나의 사물을 두고 여섯 가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경험을 통해 생각의 폭을 비약적으로 넓힐 수 있었다.



11월 23일 2015년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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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대하여



  • 꿈을 가져야 한다

꿈이 있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 뭘 하든 꿈을 잊지 않는다.

만고의 길잡이인 북극성이나 나침반의 N극처럼

꿈은 그 사람, 그 인생의 지향점이 된다.


나는 석정이를 믿고 또 좋아한다. 꿈이 있어서 믿고, 꿈이 있어서 좋아한다.

석정이는 앞으로 어떤 고난을 겪어도, 언제나 꿈을 바라보고 다시 일어설 테니까.

가끔은 오랜 여정에 지쳐 때아닌 방황을 해도, 결국엔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갈 테니까.

난 석정이의 꿈 길 옆, 벤치에 앉아 따뜻한 둥굴레차 한 잔을 들고 석정이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나는 그래서 석정이를 믿고 또 좋아한다.


  • 꿈은 왜 꿈일까

꿈을 왜 꿈이라 부를까.


1.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2.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3.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사전으로 찾아보면 이렇게, 셋이나 비슷하지만 다른 뜻이 있는데 말이다. 이 세 가지를 내 방식대로 적절히 조합해보면


한 여름밤의 꿈처럼 아련하고

사막 한가운데의 신기루처럼 기묘한

그래서 그런지 더 내 손으로 분명히 이루고 싶은 그 무엇.

  

그래서 꿈은 꿈이 아닐까.


  • 어떤 것이 꿈일까

오늘 점심으로 육회를 배부르게 먹고 싶은 것도 꿈일까. 

매 연말 연초마다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고 살을 빼고 싶은 것 또한 꿈일까. 

소년 만화의 순진무구한 주인공처럼 세계 정복을 외치는 것 또한 꿈일까. 

모르겠다. 누군들 알 수 있을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고,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너의, 너만의 꿈인데 어느 누가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다만, 네가 그 어떤 무엇을 '꿈'이라 이르고 분명히 이루고자 한다면, 

그리고 너 스스로 다른 이 앞에 나서서 그 어떤 무엇을 '꿈'이라 당당히 내보이고자 한다면,

최소한 그 '꿈'에 걸맞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노력하지 않는 꿈은 꿈이라 말 할 수 없다. 

바라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수 없고, 한순간의 단순한 요행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어제보다 오늘 하루 더 꿈에 다가서려 애쓰는 당신들의 노력이 빛바래져선 안되니까.


  • 허석정

석정이는 도시계획사가 되기를 꿈꾼다.

관련 책이나 논문을 읽기도

도시계획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기도

연습장에 도시계획 스케치를 하기도 한다.


석정이는 꿈을 꾸고

어제보다 오늘 하루 더 다가서고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그리고 그렇게 반드시

이루어진다.


11월 22일 2015년

일요일 오후 3시

여행을 준비하며, 손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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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지기(秋月知己)


별이 아니다

별이 아니다

나는 별이 아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공허한 심연 속 어딘가

흩어지는 너를 찾아 나서는 나는

차라리 비루한 어둠이리라.


나는 얼마 없는 빛을 품고

너에게 다가가 꽃을 내밀면

너는 미소로 받아내어

밤하늘에 부치니

우리 달빛 환하게 빛나고 너는


별이 되리라

별이 되리라

너는 별이 되리라.


아, 너는 별이 되고 나는

너를 비추는 비루한 어둠이리라.



9월 28일 2015년

월요일 오후 6시

가을 하늘 아래 장엄한 저녁 노을 속에서

화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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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공간을 나눈다


나에겐 너무도 당연한 어둠을

넌 빛으로 자르고 조각내어

전에 없던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었구나. 


나도 너처럼 

벽 하나, 기둥 하나 세우지 않고도

존재하는 그대로 믿고

보이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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