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폭
인간관계의 폭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내가 쓴 생각의 폭과 마찬가지로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인간관계의 폭은 '자기보다 상대적 약자를 얼마만큼 포용할 수 있는지'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에게 마음이 가고 똑똑하고 당찬 사람에게 눈이 간다. 하지만 추남 추녀에게 정을 주는 사람은 흔치 않고, 멍청하고 소심한 사람을 가까이하는 사람 또한 더더욱 없다.
이렇게 누구나 다 강자를 좋아한다면, 인간관계의 폭은 결국 '자기보다 상대적 약자를 얼마만큼 포용할 수 있는지'로 결정되지 않을까. 그런데 강하고 약한 것은 상대적 개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누군가에게 약자이며 동시에 강자다. 또한,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 우리는 어릴 때 약자였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강자가 되고, 또 늙어서 다시 약자로 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회가 되면 어학연수든 여행이든 뭐든 외국으로 꼭 나가보라 권한다. 문견을 넓힌다는 이점 외에도, 외국인으로서의 처절한 약자의 입장을 단 한 번이라도 체감해봤으면 좋겠다 싶어서다.
고등학교 1학년일 때 미국에서 처음 접한 게이 개그는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오늘과는 다르게 10년 전 그때 한국에서 게이 같은 성적 소수자는 그 누구에게도 존중받을 수 없는 정신병자 같은 존재였다. 나는 무서웠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조차 도 그냥 막연히 두렵고 불쾌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네들을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하는 나 자신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용기를 내 하루종일 퀴어 영화만 찾아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게이여본 적이 없으므로 내가 그들을 100%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위와 같이 노력한 덕분에 그들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내 인간관계의 폭이 퀴어까지 넓어진 것이다.
흑인에 대해서도, 장애인에 대해서도, 그 다른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묻고 치열하게 노력한다.
나는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12월 22일 2015년
화요일 오후 5시 30분
오남도서관에서, 손유린.